정부는 중소병원들이 야간이나 휴일에 전문의들로 비상진료체계를 갖추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8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5일 전문의 응급실 당직 규정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응급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시행에 들어갔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현실과 괴리가 큰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달초 시행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은 규제개혁에 역행하는 과도한 법안" 이라며 "의료현실에 맞게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협은 보건복지부가 수차례 입법예고안을 바꾸고 행정처분을 3개월간 유예한 것은 응급의료 관련법이 비현실적이라고 인정하는 것으로 이 제도로 인해 지방 응급의료기관은 응급실 폐쇄를 계획하는 상황까지 직면했다고 토로했다.
송형곤 의협 공보이사 겸 대변인은 "응급실 당직의에게 야간 근무 후 충분한 휴식시간과 장소가 부여되지 않을 경우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있다" 며 "국민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응급의학회도 병원 규모에 따라 편차가 크겠지만 전문의가 적은 병원이나 진료과들은 모두 당직 문제에서 어려운 상황에 닥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환자에 대해 당직전문의에게 비상호출(온콜)을 할 경우 언제까지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는 등 제도적 허점도 노출되고 있다.
환자의 권리·의무가 적힌 게시물을 의료기관 내에 의무적으로 게시해야 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역시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2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응급실 비상진료체계 설명회’에서는 전문의당직제가 가능하지 않다는 의사들의 성토와 반발이 이어졌다.
전문의 인력이 충분한 대형병원은 이전부터 응급환자가 많은 진료과는 레지던트(전공의)뿐만 아니라 전문의도 당직을 세워 왔기 때문에 제도 시행에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병원의 경우 한 두 명의 전문의가 매일 당직을 서고 다음날에 외래 환자를 진료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대형병원들을 제외하고는 지키기 어려운 제도라는 비판이 거셌다.
따라서 복지부의 3개월 계도기간은 단순한 시간 벌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3개월 뒤인 오는 11월 5일부터는 당직전문의를 세우지 않거나 당직전문의가 비상호출에 응하지 않으면 행정처분을 내려야 하지만 그 사이에 병원들이 과감한 투자로 전문의를 대폭 확충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법 개정안 시행에 대한 비상진료체계 유권해석을 내놨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전문의가 온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경우 다른 응급센터로 이송하도록 했으며, 온콜 기준도 의료기관 자율에 맡겼다.
당직전문의가 긴급한 사정(응급수술 등)으로 응급실 근무의사의 진료 요청에 응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해당 진료과목 전문의 중 ‘당직전문의가 아닌 전문의’에게 진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전문의가 1명인데 휴가 또는 출장일 경우 근무가 어려운 상황에다 대체 전문인력이 없다는 판단하에 해당 진료과목의 당직명단 게재를 제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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