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현대 울산에서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는 차영환씨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사진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
호텔현대 울산에서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는 차영환씨(57)는 현대중공업이 발간한 사보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추억하며 이 같은 일화를 전했다.
지난 1985년 현대그룹에 입사한 차 씨는 이후 28년간 정 명예회장을 비롯해 이춘림 전 회장 등 현대중공업 주요 인사들의 이발을 도맡아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갔지만, 정주영 창업자의 곁에서 머리를 다듬었던 5년이 그의 이발사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빛나는 시간이었단다.
하늘만큼 높은 분을 처음 뵜던 때에는 28살 청년이었던 당시 차 씨로서는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30분 뒤 창업자께서 도착하신다는 연락이 왔다. 기대와 걱정으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는 차 씨는 “이발소로 들어오시며 덤덤한 목소리로 ‘너 누구야? 이발은 잘해?’하고 물으셨을 때는 너무 긴장한 탓에 손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이발을 끝내자 흡족한 표정으로 “잘 하네”라고 말씀하시던 그 시간까지가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창업자가 이발소 문을 나가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고 한다.
차 씨는 정 명예회장을 자상하고 인간적인 분으로 기억한다. 그는 “오실 때 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안부를 챙기고, 사소한 이야기도 항상 귀 기울여 들으시곤 했다. 몇 달 혹은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이야기를 기억해 내고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하며 물어보시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 명예회장은 울산에 머무는 날이면 늘 호텔 목욕탕을 방문한 뒤 깔끔한 모습으로 이발소를 찾았다고 한다. 목욕을 하고 난 뒤에는 흐트러질 법도 했지만 조금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던 그는 구멍 난 양말이나 헤진 내의를 입는 것은 다반사였을 뿐만 아니라 항상 수십 년은 신은 것처럼 보이는 오래되고 낡은 구두를 신고 다녔다. 차 씨는 “한 번은 구두 밑창이 떨어졌는데, 수선할 시간이 촉박해 작업자들이 신는 안전화를 한 켤레 구해 그 밑창을 떼서 신발에 붙여드렸던 일도 있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많이 해줬던 창업자의 모습은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차 씨는 “창업자께서는 이발을 하는 동안 주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계셨는데, 저에게도 ‘무슨 일을 하던 항상 고민하고 생각해라. 생각을 잘 해야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조언을 자주 해주셨다”고 말했다. 창업자의 이 말은 차 씨가 인생을 사는데 있어 큰 지침이 됐다.
따뜻하고 자상한 창업자였지만 일처리에 있어서는 매우 엄격했다고 한다. 차 씨가 심부름을 빠르게 처리하지 못할 때면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무섭게 야단을 쳤다. 한 번은 이발을 하다가 업무와 관련된 전화를 받고는 “전화할 시간에 발로 뛰어!”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모든 일을 꼼꼼히 챙기고 현장에서 해답을 찾길 원하셨던 창업자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호텔현대 울산에서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는 차영환씨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이발을 할 때 사용했던 가위와 빗을 들고 있다. |
2001년 정 명예회장의 타계소식을 듣고 “부모를 잃은 것 같이 슬펐다”는 그는 회사에 차려진 빈소에 매일 같이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고인을 추억했다고 한다. 지금도 창업자의 머리를 다듬었던 가위와 빗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그는 이발 일을 그만둘 때쯤 이를 아산기념전시실에 기증할 생각이다.
차 씨는 “요즘과 같이 경제가 어렵고 힘든 시기에는 특히나 창업자의 부재(不在)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며 “사우들이 하나로 뭉쳐 불굴의 의지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창업자를 마음 속의 큰 별로 삼아 이 위기를 극복하고, 계속해서 그의 뜻을 이어가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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