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은행의 예금회전율은 3.7회로 5년 4개월만에 최저치를 찍었던 지난해 9월(3.7회) 수준으로 다시 떨어졌다. 예금회전율은 소비 등을 위해 은행에서 자금이 인출된 횟수를 뜻한다.
회전율이 낮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돈의 유통속도가 느려졌음을 의미한다. 2월은 설 연휴 등이 끼어 영업일수가 줄면서 기업에서 자금 수요가 감소한 계절적 요인이 있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다양한 금융상품이 많이 출시되면서 과거에 비해 예금회전율의 자금흐름 판단 지표 기능은 많이 약화됐다”면서 “이를 단기부동화 현상과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기간 수시로 출금이 가능한 요구불예금의 회전율은 29.1회로 금융위기 직전인 지난 2008년 2월(27.1회) 이후 5년만에 가장 낮았다. 기업 간 결제자금으로 쓰이는 당좌예금의 회전율 역시 501회로 전월(547.6회)보다 하락했다.
이는 경기 상황이 나빠지면서 기업이 투자를 줄이고 가계 역시 소비를 줄이면서 대출 수요가 함께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은행에서 잠자고 있는 돈이 많다는 얘기다.
저금리로 인해 은행권의 예금도 장기보단 단기에 집중되는 모양새다. 6개월 이상 1년 미만의 정기예금이 2월 현재 66조660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6%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반면, 1년 이상 2년 미만의 정기예금과 2년 이상 3년 미만의 정기예금은 각각 1.8%와 -12.8%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예·적금보다도 예치기간이 짧은 금융투자업계의 단기금융상품에 몰리는 자금 규모는 더 크다.
만기 30일 이내의 초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의 설정액은 지난해 말 63조1400억원에서 약 4개월만인 이달 11일 현재 약 79조원으로 10조원 이상 증가했다. 고객의 예탁금을 어음이나 채권 등에 투자하는 개인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도 12일 현재 42조9600억원으로 지난해 말 40조5300억원에 비해 2조원 가량이 늘었다.
단기상품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을 동안 잠시 자금을 묶어두려는 수요가 많을 때 발생한다. 향후 경기 회복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일단은 경제상황을 관망하자는 심리에서 출발한다.
이 같은 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이 지속되면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는 자금의 장기적 운용이 어려워진다. 실물경제로 유입되는 자금이 줄어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임 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의 불확실성을 해소해 소비나 투자심리를 회복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꼽았다.
그는 “추경 등 정부가 경기부양에 대한 의지가 충분히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한은이 최근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불확실성 제거에 미흡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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