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1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처음으로 날아간 국가도 미국이었다. 당시에도 우리 기업인들은 현지에서 활발한 투자 유치 활동을 전개하는 등 민간 외교 사절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해 11월 초, 박 의장에 앞서 먼저 미국행 항공기에 몸을 실은 기업인들은 총 20명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가 구성한 민간경제교섭단원들로,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 구인회 락희화학(현 LG화학) 사장, 이정림 대한양회 사장, 조홍제 제일제당 사장(효성그룹 창업주), 조성철 중앙산업 사장, 이동준 대한양회 사장, 정재호 삼호방직 사장 및 수행원들이었다.
이들의 주목적은 외자 유치 활동이었다. 6·25 전쟁이 끝난 지 8년여가 흘러도 북한의 도발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연간 2억 러 내외의 대외원조를 받아 힘들게 국가 살림을 꾸려왔던 시기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부흥을 추진하고자 한 박 의장은 대규모 자금 도입을 추진했고, 기업인들도 나서 해외 민간자금을 유치하도록 독려했다.
미주지구단장은 이병철 사장이 맡았다. 한국경제인협회 초대 회장이었던 이병철 사장과 기업인들은 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다니며 미국개발차관자금(DLF),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관리들과 면담을 하고 한국 투자를 요청하는 한편 다수의 미국 기업인들과도 접촉을 시도했다. 뉴욕에서는 미 극동상공평의회 연차회의에 참석해 300여명의 미국 및 아시아 기업인 앞에서 자신의 사명을 설명하고 대한국 투자를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아쉽게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만, 이병철 사장은 11월 18일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 묵고 있던 박 의장을 찾아가 한국을 위한 미국의 DLF 차관 제공 전망이 종전보다 훨씬 희망적으로 바뀌었으며, 미국 기업인들의 한국 투자에 대한 태도가 현저히 호전됐다고 보고 했다. 기업인들의 노력으로 한국에 대한 투자 환경을 환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에는 역대 사상 최대 규모인 51명의 기업·경제인이 참여하는 경제사절단이 수행한다. 대기업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비롯해 김창근 SK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17명이다.
이들 사절단의 역할은 '한국 경제의 안전성'을 홍보한다는 점에서 과거 선대 회장들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미국과 보다 동등한 위치에서 경제협력의 확대 방안을 논의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한·미 동맹 60주년이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년을 맞는 등 북한 핵 문제에서 비롯된 한반도 리스크와 한국 경제에 대한 외부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활동을 활발히 펼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이건희 회장의 역할이 주목된다. 1961년 사절단장을 맡았던 아버지처럼 그도 국내 최고 기업의 수장으로서 사실상 사절단의 얼굴 마담으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961년 한국의 미국 수출액은 700만 달러, 수입 1억4300만 달러로 1억3000만 달러 무역 적자였으나 2012년에는 수출 585억2500만 달러, 수입은 433억4100만 달러로 151억84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50여년 전 자금 유치를 위해 자존심을 뭉개야 했던 한국 기업인들은 이제 동등한 위치에서 미국 기업인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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