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미 의회 연설에서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이 환경과 재난구조, 원자력 안전, 테러 대응 등 연성 이슈부터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고 점차 다른 분야까지 범위를 넓혀가는 동북아 다자간 대화 프로세스를 시작할 때가 됐다"며 "여기에는 북한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북한도 참여하라고 손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 손을 잡을지는 미지수다.
정부 당국자는 9일 "북한도 한·미 선언을 보고 정책적 고민을 하고 있지 않겠나"라며 "북한은 국제사회애서 우리나라가 대북정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전략적으로 계산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우선 북한이 박 대통령의 제안에 호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양측이 별다른 유인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도 태도를 돌변해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기에는 핑곗거리가 불충분한 상황이라는 해석이다.
오히려 북한이 현재의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기 위한 추가적인 도발 카드도 꺼낼 수 있다.
이미 북한은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한·미 서해 대잠수함 훈련 등을 비난하면서 서해5도를 중심으로 한 도발 가능성을 거론했다.
무엇보다 대화를 둘러싼 박 대통령과 북한의 접근방식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동북아 국가들이 환경, 재난구조 등 덜 딱딱한 이슈에서 먼저 신뢰를 쌓은 뒤 정치·군사안보 분야로 확대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을 염두에 두고 있다.
반면 북한은 올해 들어 한반도 위기의 책임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에서 비롯됐다며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나 군축협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가동 문제도 남한은 물론 미국의 탓으로 돌리면서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북한이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계속되는 현 대치국면에서 정치문제를 건너뛰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북한이 선제적 대화 제의 등을 통한 약간의 전술 변화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도 점점 대북제재에 강하게 참여하고 있는 만큼 북한이 국면 전환을 위해 전격적 대화 제의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 긴장상태는 유지하되 현재 국면을 주도하는 차원에서 먼저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개성공단이 그 마중물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남북 양측이 극한대립 속에서도 개성공단은 정상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언론을 통해 "북한이 지난 3개월간의 피로감에 지친 데다가 한·미 정상의 부정적인 대북 인식,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 등의 정세를 판단해 진정성이 담겼든 아니든 간에 오히려 선제적으로 대화 공세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