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기업에 재직 중인 직장인 A(45)씨는 빨리 임원으로 승진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같이 말했다.
직장인들의 정년을 60세까지 늘리는 정년연장법이 통과됐지만 조기퇴직에 대한 샐러리맨들의 공포는 여전하다.
기업들이 법망을 피해 퇴직을 종용할 경우 나이와 관계없이 길거리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 직장인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국회는 지난달 30일 본회의에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 일명 정년 60세 연장법을 통과시켰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고 명시한 개정안은 오는 2016년 공공기관, 지방공사 및 공단, 30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적용된뒤 이듬해인 2017년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된다.
그러나 상당수 직장인들은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며, 정년연장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이 최근 20~30대 성인 남녀 17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년연장에 부정적인 응답자 중 33.4%는 ’어차피 정년까지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정년연장을 탐탁찮게 생각하는 기업들이 정식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거나, 명예퇴직 신청을 접수하지 않더라도 직원들을 내쫓을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특정 직원을 아무런 연고가 없는 지방으로 발령 내거나, 한직을 떠돌게 하는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부서장 직함을 뺏은 뒤 후배를 부서장 자리에 앉히고, 별다른 임무를 맡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부서를 옮긴 뒤 심리적 박탈감에 시달리다 회사를 그만 두는 직장인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직장인들은 기업들이 1~2년짜리 단기 임원을 양산해 인력을 계속해서 물갈이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임원이 되면 사실상 신분이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바뀌게 된다는 점을 이용해 조기 승진 및 퇴직자를 배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년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직장인의 꿈으로 불리는 임원 승진을 꺼리는 이들도 있다.
특히 결혼과 출산 연령이 갈수록 늦어져 50~60대에도 자녀의 양육비를 충당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늘면서 승진 보다 정년을 중시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말단 직원 때부터 승승장구해 40대에 임원을 단 일부 동료들은 퇴직 이후 재취업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 한다”며 “임원 욕심 때문에 일찍 퇴사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과장이나 차장으로 정년을 채우는 것이 낫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년연장법이 갓 통과된 만큼 잘못된 관행을 근거로 부작용을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기업 관계자는 “법안만 통과됐을 뿐 아직 각 기관이나 기업에서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라며 “법안이 시행되기 전까지 임금피크제를 비롯한 제도적 보완장치를 충분히 검토하고, 노사가 각종 쟁점에 대해 원만하게 합의한다면 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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