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계 지하경제'로 불리는 농산물 산지유통인 시장을 양지로 끌어 올린다는 복안이다.
이천일 농식품부 유통정책관은 21일 "농협중앙회가 지역의 주산지 농협과 연계해 계약재배 체계를 구축하고 aT는 영농조합법인, 법인화된 산지유통인과 상시비축 사업으로 이원화하기로 했다"며 "배추·무 등 노지채소 유통의 80%를 점하는 '산지유통인'도 제도권으로 편입해 2015년까지 '품목조합'으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농협은 중장기, aT·산지유통인은 단기 계획으로 시장가격 안정도모
농협중앙회는 배추 등 노지채소류 주산지의 품목농협과 중장기적인 수급 및 가격안정을 위한 계약재배 체계를 구축한다.
aT는 현재 수행하고 있는 상시비축 사업을 확대해 영농조합법인, 법인화된 산지유통인과 연계체계를 구축해 상시비축 사업을 실시한다. aT의 상시비축 사업은 시장가격이 상승 및 하락했을 때 단기적으로 시장가격을 안정화 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상시비축 사업의 운영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포전매매(일명 밭떼기 거래)의 특성을 반영해 계약재배와 수매를 동시에 실시하기로 했다.
또 aT는 수매 2개월 전에 농식품부, 한국신선채소협동조합 등과 수매가격, 대상자 선정 등을 사전에 협의·결정키로 했다. 수매가격은 생산원가, 적정이윤 등을 반영해 기준가격을 설정하고 수매시점에 도매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상승과 하락분에 대한 손익을 반영한다.
최병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는 노지채소류 수급안정사업을 일반 수급안정사업, 중앙회 직영사업, 출하 계약재배, 긴급 수급안정 4가지 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농협중앙회 직영사업과 aT의 긴급수급안정사업 간 차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며 "이에 농협중앙회와 aT는 노지채소류 물량수집 부분에서 상호 경쟁관계에 있어 산지 거래가격을 상승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농협중앙회가 직영사업을 통해 산지유통인과 동일하게 포전매매를 실시하는 것은 생산자 조직을 바탕으로 계약재배 사업 확대, 노지채소류 취급 산지농협의 경쟁력 향상 등의 취지와 적합하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최 부연구위원은 "농협중앙회가 직영사업과 계약재배 사업을 동시에 운영할 경우 손실발생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에 계약재배가 효과적으로 추진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는 채소류 수급안정사업을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이 실시하는 계약재배사업과 aT가 실시하는 상시비축 사업으로 이원화해 운영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급조절위원회 중심으로 역할 분담
노지채소류 수급안정사업의 역할분담 체계는 채소류 수급조절위원회(가칭)를 중심으로 농협과 aT의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다.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은 농안기금 및 자체 적립금을 활용해 계약재배를 실시하고, aT는 농안기금을 활용해 상시비축 사업을 한다.
이천일 정책관은 "노지채소류 분야에서 위원회를 중심으로 단기적 수급안정사업은 aT의 상시비축 사업을 통해 실시하고 중장기적 계약재배 사업은 농협 및 지역농협을 대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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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최병옥(2013) 외 '노지채소 수급안정사업 효율화 방안 연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
◇도매시장 및 실수요자 역할 강화
노지채소 가격은 서울시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비롯해 공영도매시장에서 결정되므로 도매시장이 수급 및 가격안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현재 노지채소 도매시장 가격 발견방식은 상장 경매위주로 실시되기 때문에 반입량 변화에 따라 가격변동이 크다. 도매시장 반입량이 증가하거나 감소할 경우 가격이 하락하거나 상승하는 폭이 크다는 게 상장 경매의 단점으로 꼽힌다.
이에따라 농식품부는 노지채소 상시비축 물량이 도매시장에 방출될 때 가격결정 방식을 상장경매, 정가·수의매매, 상장예외 등으로 다양화하고, 실수요자가 상장경매에 집중되는 현상을 사전에 방지할 계획이다.
또 대형유통업체, 식품가공공장, 단체급식 등의 실수요자가 aT의 상시비축 물량을 구입할 때는 사전에 품질, 수량 및 가격을 결정해 도매시장을 경유하지 않고 구매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채소류 상시비축 물량이 실수요자에게 직접 공급되면 유통 및 물류비용 등이 절감돼 가격하락과 공정거래 확립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천일 정책관은 "정부의 비축물량이 도매시장에 방출되면 일부 상인이 이를 구매해 다시 저장하는 등의 불법행위로 시장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노지채소 상시비축 물량이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직접 공급될 경우 도매시장을 경유하지 않으므로 각종 수수료, 유통 및 물류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대형유통업체 같은 경우는 소비자에게 싼 가격으로 직접 공급할 수 있어 가격안정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지유통인이 만든 첫 협동조합 탄생…올해 2000억원 출하 목표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로 산지유통인이 만든 첫 협동조합이 탄생했다. 한국신선채소협동조합이 바로 그것이다.
그간 산지유통인은 정부의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으려고 했다.
산지유통인이 만든 조합은 공익을 추구하는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한 농업법인이어서 정부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농업정책은 영농조합법인, 농업협동조합법에 근거한 생산자 단체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이에 대해 최병옥 부연구위원은 "한국신선채소협동조합은 협동조합기본법에 근거한 농업법인으로 등록했다"며 "농협법에 근거해 협동조합을 설립하면 자신들이 힘들게 쌓아온 실적이 농협으로 잡히고, 영농조합법인으로 설립하면 내부 불화가 발생할 경우 지분구조에 의해 사유화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병옥 부연구위원은 "한국신선채소협동조합 설립은 산지유통부문의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며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면 농협법에 근거한 법인이나 영농조합법인으로 설립하면 되는 데도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조합은 지난해 12월부터 404명의 조합원이 모여 △농자재제조 및 비료 공동구매 △상표등록 및 브랜드화 △정산 및 물류관리 전산화 구축 △협동조합 홍보 및 사회공헌 나눔행사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같은 노력으로 업무를 시작한지 3개월만에 120억원 규모의 계통출하 실적을 쌓았다. 올해 목표치는 2000억원.
정만기 한국신선채소협동조합장은 "협동조합 기본법이 지난해 12월 첫 발효됐고, 그 외 유통관련 법은 그 이전에 만든 법망을 활용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현 제도나 정책, 규정 등도 현 시점과 맞지 않아 정부에 요청한 상태인 데, 긍정적인 답변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부분의 산지유통인은 3~4년만에 찾아오는 농산물 가격 폭등을 노리고 유통거래에 참여한다. 배추 등 농산물을 저장창고 등에 비축해 두었다가 시장가격이 가장 높을 때 출하하면서 한방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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