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최근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데 대해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면서 이를 의식한 정치권이 졸속 개정에 나서고 정부가 맞장구를 쳤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신고 의무를 강화했다. 그러나 신고 기준이 모호하다. 한 기업 임원이 정부에 문의하자 돌아온 답변은 “기업 자체적으로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사고 발생시 부과하는 과징금 규모를 매출액 대비 5% 이하로 규정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부당이익 환수가 목적인 과징금을 안전사고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과징금 부과 기준을 매출액으로 정해 적자 기업도 과징금을 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 국회 움직이자 정부 눈치보기…관련 규제 봇물
올 들어 대기업을 중심으로 유해화학물질 관련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정치권은 사고 예방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관련 법안 개정에 나섰다.
당초 개정안에는 과징금을 매출액 대비 10% 이내에서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가 해당 상임위와 법사위를 수차례 오고 간 끝에 5% 이내로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전혀 관계 없는 경제민주화 화두가 끼어드는 등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논란이 멈추지 않았다.
또 업무상 과실치사에 대한 처벌을 10년 이하 금고 또는 2억원 이하 벌금형으로 명시했지만 처벌 대상을 최고경영자로 확대할 것인지 등을 놓고 정치권은 물론 정부 부처 간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법안을 개정하면서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흥적으로 개정 작업을 진행한 결과다.
정부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관행도 그대로 재현됐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즈음해 정부도 관련 대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고용노동부는 하청업체가 도급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청업체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대 화학사고 등 예방대책’을 지난 21일 발표했다.
환경부도 화학물질 규제·관리를 대폭 강화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을 22일 공포했다. 기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있지만 새로운 법을 하나 더 만들어 규제를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중견기업 대표는 “특정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없던 법까지 만들어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정부가 경제를 살릴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 “과징금 5%룰은 기업 하지 말라는 얘기”
안전사고 발생시 부과되는 과징금 규모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매출액의 5%를 과징금으로 낼 경우 대부분의 기업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재계 인사는 “과징금 5%룰은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라며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까지 궁지로 몰 수 있는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이 과도한 규제가 기업들의 국내 탈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매출액 5%를 과징금으로 추징당하면 그 금액이 1조원을 훌쩍 넘게 된다. 이 정도의 과징금 리스크가 있는 상황에서 수조원을 투자해 생산라인 신설 및 증설 등을 추진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게 업게의 시각이다.
투자를 하더라도 안전사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해당 지역주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안전사고 예방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에는 기업들이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합리적인 수준에서 법안이나 규정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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