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종사자들의 한숨소리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규모가 15조원이 넘는 데다, 상반기 실적도 저조해 일부 건설사는 신용등급 강등까지 당할 정도로 위기상황이다.
대형건설사의 한 재무담당 이사는 "매달 돌아오는 대출 만기일이 꼭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날 같다"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신용등급 A급과 BBB급인 중대형 건설사들이다. 시공능력평가순위 30위 안에 포진한 건설사들로 재무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금융·증권가에서는 내년까지 이들이 갚아야 할 대출액수가 상당해 '쓰나미급' 파고가 일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8일 건설업계와 증권·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건설사 회사채 규모는 전체 16조원(1분기 기준)의 27.2%인 4조3595억원에 이른다. PF우발채무 만기 도래액도 9조5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신용등급 A와 BBB급인 총 16개 건설사가 올해 갚아야 할 채무(회사채와 PF우발채무)는 모두 10조1970억원이다. 내년에도 이들은 6조5390억원을 갚아야 한다.
대부분이 회사채 상환기간이 짧다. 특히 BBB급 건설사의 회사채는 1년이 안 되는 초단기 회사채가 52.8%에 이를 정도다. 이들의 경우 차환이나 만기 연기, 유상증자 등이 쉽지 않아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PF우발채무의 경우 갈수록 줄고 있긴 하지만 대우건설(2조2000억원)과 롯데건설(2조7700억원), 한화건설(1조4600억원)은 여전히 1조원을 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들은 그나마 진행 중인 사업이 많은 편이다.
이에 비해 현대산업개발·현대엠코·KCC건설·경남기업·한라건설·동부건설 등은 PF우발채무 규모가 4000억~6000억원대로 사업 규모에 비해 비교적 잔액이 많은 상태다. 두산건설의 경우 지난달부터 연말까지 한 달에 한 번씩 회사채가 만기도래한다. 동부건설도 비슷한 상황으로 올해만 7번 돌아온다.
정부가 이날 회사채 안정에 6조4000억원을 투입,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의 80%를 인수하겠다고 했지만 단기대책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익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30위권 건설사들이 내년까지 그룹간 합병이나 매각 같은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또 "회사채 신속 인수는 단기적인 효과가 있겠지만 대상기업이 주채권은행과 자구이행 계획약정을 체결해야 해 낙인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건설업체 불황이 깊어지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 바람도 거세다. 대우건설 등 일부는 조직 축소 및 임원 감축 등 자발적 구조조정을 이미 단행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도 이르면 이번주 신용위험도 정기 평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영세한 시행사 위주인 것으로 알려져 파급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부동산시장 활성화 외에는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4·1 대책에도 주택시장이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어 주택사업을 주로 해온 건설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는 관련 법안들이 서둘러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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