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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익 씨온 대표 |
얼마 전 모 일간지에 국무회의 지도부 구성원과 정당 지도부 33명이 꼽은 책 136종을 분석한 기사가 실렸다. 2013년 대한민국의 행정·입법을 총괄하는 이들의 책 선반에는 대한민국 현 시점의 지향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읽은 책 중에 눈에 띄는 것은 댄 세노르·사울 싱어의 '창업국가'란 책이다. 특히 새누리당 지도부는 절반이 '창업국가'를 읽었거나 앞으로 읽을 책으로 꼽았다. '창업국가'는 이스라엘 벤처 생태계를 모델로 쓴 책으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의 시발점이라는 바로 그 책이다.
정부는 창업국가에 기반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정책으로 '벤처·창업자금 생태계 선순환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벤처기업을 쉽게 만들고 팔 수 있도록 하고, 재투자를 통해 또 다른 벤처를 세우도록 하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즉, 한국도 실리콘밸리처럼 '창업→성장→매각→재투자'의 과정이 순환되는 벤처 생태계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얼마 전 야후가 약 1조2000억원에 인수한 텀블러는 우리나라에 다소 생소한 회사다. 텀블러는 2007년도부터 시작한 마이크로 블로깅 서비스를 제공하는 벤처기업으로, 올 3월 기준 가입자 수가 1억1700만명에 달하고 초당 900개의 포스트가 올라오는 강력한 소셜미디어다.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하고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했던 것처럼 야후는 텀블러를 인수하며 새로운 성장의 초석을 찾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텀블러 같은 새로운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투자 및 인수·합병(M&A)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페이스북은 사진 앱 서비스인 인스타그램을 10억 달러에 인수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업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회사인 야머를 12억 달러에 인수했다. 실리콘밸리는 지금도 셀 수 없이 많은 스타트업들의 창업이 일어나고 있으며, 스타트업들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인수·합병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성공한 창업가들이 계속 쏟아지는 그야말로 '창업국가'인 것이다.
정부와 국무회의 지도부가 창조경제를 외치며 창업국가를 배우자고 하는 대한민국의 현시점은 어떠한가? 최근 들어 이렇다 할 스타트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은 전무하다. 정부가 벤처·창업자금 생태계 선순환 방안을 발표했지만 투자하거나 인수할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정책은 단지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또 스타트업을 육성한다고 청년창업 활성화 정책과 1인 창조기업 육성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창업자금으로 5000만원 정도를 지원하는 이런 제도로 과연 제대로 된 스타트업이 육성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오히려 자칫 잘못하면 새로운 청년실업자들만 더 양성할 뿐이다.
린(Lean) 스타트업 저자 에릭 리스는 "비즈니스는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돈을 벌거나 고객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와 싸워 생존하고 번성하는 과정"이라며 "스타트업은 무언가를 만들어서 돈을 벌거나 고객에게 서비스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지속 가능한 사업을 어떻게 만들지 학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린 스타트업에서 얘기하듯이 스타트업은 열정과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도전해야 하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것이다. 이런 배고프고 절박한 과정에서 창조적인 혁신이 나오고 새로운 서비스나 기술이 나오는 것이다. 또 성공적인 스타트업이 가져야 할 핵심 가치는 바로 '창업가 정신은 관리'라는 점이다. 스타트업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열쇠는 바로 '관리'라는 지루한 일이며, 성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고 측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하는 지속적인 피드백 프로세스를 따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창업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창조경제 활성화 정책이나 벤처 정책도 중요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제대로 된 창업가를 많이 양성하는 것이다. 새로운 모험에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창업가들은 그 자체로 '창업국가'의 근원이며 창조경제와 혁신의 원동력인 것이다.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으로 도전하는 창업가들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앞으로도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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