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은 원장
곽 원장은 지난 22년 동안 복지공동체 ‘갈거리사랑촌’을 운영하면서 장애인과 독거노인을 돌봐왔고, 무료급식소 ‘십시일반’과 ‘원주노숙인센터’ 등을 열어 노숙인들의 자립을 위해 앞장서왔다.
그는 10여명으로 시작한 ‘갈거리사랑촌’을 2006년 장애인과 노인 30여명이 생활할 수 있는 시설로 확장했다. 또 1997년, 1998년 잇달아 ‘십시일반’과 ‘원주노숙인센터’의 문을 열어 노숙인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지금까지 두 곳을 거쳐 간 노숙인만 누적연인원 140여만명에 달한다.
이러한 나눔 활동은 모범적인 복지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복지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먼저 찾아 시설이나 제도를 만드는 ‘맞춤형 복지’의 모범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곽 원장의 봉사하는 삶은 의대시절부터 시작됐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의료봉사를 놓지 않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곽 원장은 수련의 시절, 한센인을 대상으로 3년간 무료진료를 했다.
국군원주병원에서 군의관으로 3년간 복무할 때에는 노인요양시설과 지적장애인시설을 찾아 자원봉사를 했다.
1989년 의대 출신인 아내와 함께 원주시 중앙동에 ‘부부의원’을 개원해 운영하면서, 원주교도소 의무과장을 맡아 재소자들을 돌봤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나눔의 큰 뜻을 실천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갈거리사랑촌은 1991년 8월31일 문을 열었다. 1990년 곽병은 원장이 사재 5000만원을 털어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대안리 ‘갈거리’라 불리는 마을에 8200여㎡ 대지를 사들였고, 농가 3채를 고쳐 숙소로 만들었다. 이곳은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장애인과 노인의 삶의 터전이 됐다.
1996년 곽 원장은 내실 있고 투명한 운영을 위해 갈거리사랑촌 모든 재산을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에 기증하고 지금은 운영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다.
곽 원장은 사회복지에 뜻을 두고, 전문적인 복지사업을 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가톨릭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갈거리사랑촌은 처음부터 내 소유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기회가 닿으면 사회복지법인에 넘길 생각이었는데 제가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고, 교단에서 운영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고 투명할 것 같아서 기증했지요.”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친 그해 겨울, 곽 원장은 원주시 중앙동에 무료급식소인 ‘십시일반’을 열었다. 원주에 끼니를 거르는 노숙인이 많다는 것을 알고 모른 체 지나칠 수 없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점심을 제공하는 십시일반에는 하루 평균 120여명이 찾는다.
2003년부터 십시일반은 매주 한 번 농촌지역의 독거노인들에게 밑반찬을 배달하고, 이․미용 봉사도 진행한다. 2008년부터는 이용자들의 ‘자존심 값’으로 받는 200원을 모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연간 4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1998년에는 십시일반을 운영하다보니 노숙인 문제가 심각하다 싶어서 원주역 인근에 ‘원주노숙인센터’를 만들었다. 이곳에선 아침과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상담을 통해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등 노숙인의 자립을 돕고 있다.
곽 원장은 2004년 9월 은행 문턱이 높아 돈을 빌리기 어려운 노숙인들을 위해 '갈거리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임대주택 월세 보증금, 자녀 학자금, 소규모 사업자본금 등으로 1인당 200만원 한도 내에서 무담보 신용대출을 해준다. 현재 137명에게 1억 9000여만원을 대출해줬고, 상환율은 평균 96%에 달한다.
중앙대 의대 시절, 의료봉사로 첫걸음을 떼고 쉼 없이 22년간 한 길만 달려온 곽 원장은 제25회 아산상 대상 수상이 확정되자 놀라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무척 큰 상이고, 상금도 2억원이나 돼서 놀랐어요. 이런 상을 받을 만큼 일을 했나, 이 많은 돈을 어디에 쓰나, 두려웠어요. 한편으론 봉사의 꿈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기도 했지요.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라는 지원과 격려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수상금은 공적인 곳에 잘 사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환자 진료를 보고 있는 곽병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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