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세계 최고의 조선 기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 있는 기업이다. 그러나 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기업이 아닌 산업은행이다. 지난 상반기 STX그룹이 글로벌 조선시장의 오랜 침체로 인해 채권단에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STX조선해양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를 관리하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업계 3위인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사실상 4위 STX그룹까지 거느리게되면서 1위인 현대중공업과 2위 삼성중공업보다도 덩치가 큰 조선업체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농담 섞인 이야기지만,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 때 세계 호황기를 타고 글로벌 시장을 호령했던 조선업계의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글로벌 경기불황이 장기화 되면서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주력 분야 업황의 침체가 계속되자 국내 산업계에서 금융권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 침체기간 동안 은행 등에서 부족한 자금을 조달해 오던 기업들이 결국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에 들어가면서 채권단이 경영에 개입하는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지난해 웅진그룹을 시작으로 STX그룹과 동양그룹 등 이미 그룹의 해체 수순에 들어간 기업들 외에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동부그룹 등이 잇따라 계열사 처분과 구조조정 등 ‘뼈를 깎는’ 자구책안을 내놓고 있는 것 역시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채권단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채권단에 기업이 넘어가는 걸 눈뜨고 바라봐야만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경영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떠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시장경제의 당연한 이치이나,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사이의 정책적 도움도 필요하다. 산업과 금융자본 사이에 정부의 정책적 조율이 필요한 이유다.
최근 1~2년 사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중견 제조업체들의 몰락을 바라보는 산업계 관계자들의 불안감이 근거 없는 걱정은 아닐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산업계에 대한 정책 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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