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발언 쏟아내는 G2 중국의 대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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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2-1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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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아진 국력, 영향력 따라 대변인들 무게감 높아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국력이 강해지고 국제적 영향력이 막강해져감에 따라 중국 외교부 대변인들의 발언에도 그만큼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거의 모든 국제적인 이슈들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들은 그만큼 해박한 지식을 드러내고 있으며, 수많은 외신기자들을 상대하기에 걸맞는 순발력과 위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중국이 G2에 올라서면서 더욱 매스컴에 오르는 일이 많아진 만큼 스타 대변인들도 출현하고 있다. 

중국에 외교부 대변인 제도가 생겨난 것은 1983년이다. 이후 20여명의 대변인이 배출됐다. 대변인을 그만둔 이후에는 해외 공관의 대사나 공사로 영전해갔다. 대변인의 임무가 더욱 막중해감에 따라 이들이 향후 중국 외교부를 주도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쿵취안


외교부 대변인 출신으로 가장 고위직에 올라 있는 사람은 쿵취안(孔泉)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판공실 부주임이다. 공산당중앙에 설치된 외사영도소조의 조장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며 판공실 주임은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국무위원이다. 쿵취안 부주임이 사실상 외사영도소조의 실무를 총괄한다고 볼 수 있다. 올해 58세인 쿵취안은 외교부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외교관이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수석대변인으로 일했다. 2004년 미국에 이어 유엔에 두번째로 많은 돈을 내고 있는 일본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오르려 하자 쿵취안은 "유엔은 기업의 이사회가 아니다"라며 "재정적 기여도에 따라 유엔의 구성이 결정돼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해 일본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류젠차오


필리핀대사를 거쳐 현재 인도네시아 대사로 활동중인 류젠차오(劉建超)는 '최연소 대변인'과 '최장수 대변인'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받았었다. 2002년 38세의 나이에 대변인에 올랐던 류젠차오는 6년동안 176회의 외신기자 브리핑을 주재했다. 전세계 언론은 그에 대해 진중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류 대변인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 기자로부터 구두 세례를 받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브리핑에서 "모든 국가 원수들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전제한 뒤 "나도 기자들이 질문하려고 손을 드는 모습만 보지 않고 누가 구두를 벗는지를 지켜봐야겠다"는 유머를 던져, 외신 기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2008년 류젠차오는 필리핀 대사로 부임했으며 이어 2012년에는 인도네시아 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친강


현재 중국 외교부의 수석대변인으로, 향후 주요국 대사나 부부장(차관)승진을 바라보고 있는 친강(秦剛)은 강성발언으로 유명하다. 2005년 대변인을 맡은 후 2010년까지 5년동안 대변인직을 수행한 친강은 1966년생으로 두뇌회전이 빠르고 적확한 단어구사로 정평이 나있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 봉송 와중에 프랑스 등지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을 놓고 외신들과 날카롭게 대립한 사건은 아직까지도 유명하다. 당시 한 외신 기자가 “중국이 조직을 동원해 불장난을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자 그는 “중국은 불장난을 하지 않는다. 불과 관련이 있다면 우리는 올림픽 성화를 높이들뿐”이라고 받아쳤다. 2010년9월 영국대사관 공사로 부임했으며, 2012년1월 다시 외교부 대변인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일본 언론이 김정은의 극비 방중설을 보도하자 “007 소설 같은 얘기”라며 일축한 적도 있다. 이런 발언들은 외신들로부터 “오만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네티즌들은 “개혁개방 30년으로 급속한 경제 성장을 하면서 드높아진 중국의 위상에 걸맞게 할 말을 한다”며 호평했다. 친강은 지난달 일본 지도자가 공공연하게 ‘중국위협론’을 떠들어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만약 일본이 중국을 꼭 적으로 만들어야겠다면 그것은 상대를 잘못 택한 것"이라고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갔다. 

화춘잉


2010년 천안함사건과 연평도사건이 발생했을때 북한의 입장에서 논평을 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유명한 장위(姜瑜) 대변인은 2006년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그는 중국 4번째 여성대변인이었다. 친화력이 있으며 따뜻한 이미지로 남아있으며, 스페인의 한 매체는 2009년 그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치인' 중 한명으로 꼽기도 했다. 2012년 4월 장위 대변인은 외교부홍콩특별사무소 특파원으로 부임했다. 장위 대변인의 후임으로는 역시 여성인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이 임명됐다. 화춘잉 대변인은 장위 대변인에 이어 중국의 소프트한 이미지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2월 대변인에 오른 마자오쉬(馬朝旭)는 1986년 베이징대 재학 시절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대학생 토론회'에 참가, 베이징대의 우승을 견인한 뒤 본인은 최우수 토론자상을 받았다. 언변이 뛰어난 마자오쉬는 2011년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로 승진했으며 지난 8월 호주대사 자리를 꿰찼다. 

2011년9월1일 외교부는 외신기자회견을 매주 2회에서 5회로 늘리면서 대변인을 4명으로 한명 더 늘렸다. 이 때 합류한 대변인이 류웨이민(劉為民)이었다. 그는 중국 외교부의 26번째 대변인이었다. 1968년생인 류웨이민은 대변인 초기 긴장한 모습을 자주 보였지만, 이내 곧 능숙한 대변인의 모습을 보여줫다. 2012년8월 그는 주미대사관 공사참사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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