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송강(松崗) 구평회 E1 명예회장은 대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업에만 전념하는 ‘범 LG 오너 일가’의 가풍속에서 눈에 띄는 업적을 이뤄낸 기업가다.
연암(蓮庵) 구인회 LG그룹 창업자의 넷째 동생으로, 창업공신인 송강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기업가 중 보기 드물게 영어와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송강은 이런 능력을 배경으로 LG그룹의 글로벌 비즈니스를 주도했다.
1951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락희화학(현 LG화학) 지배인으로 경영에 첫발을 내디딘 송강은 LG의 첫 해외주재원으로 파견됐다. 1954년 뉴욕의 ‘콜게이트’ 주변에 머물며 치약 제조기법을 알아내 ‘럭키치약’으로 국산 치약 시대를 열었다.
송강은 락희화학 전무 시절인 1965년 정유사업 진출 보고서를 연암에게 제출해 1967년 미국 칼텍스와 합작으로 호남정유(현 GS칼텍스)를 설립했다.
회사 경영을 맡은 송강은 꾸준히 사세를 확장시키는 한편 액화석유가스(LPG), 폴리프로필렌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데 성공했다. 1984년에는 LPG 수입사인 여수에너지(현 E1)를 설립해 한국 중화학공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송강은 대외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대표적인 업적이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다. 1994년 정부는 월드컵 유치를 선언했고, 유치위원장에 송강을 추대했다. 국민의 신망이 높고 외국과의 관계를 잘 풀어갈 수 있는 ‘국제적인 마당발’이라는 점이 부각됐다.
평소 조용한 성격이지만 일을 맡으면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발휘하는 송강은 사실상 일본의 단독개최로 기울던 월드컵을 한·일 공동개최로 이끌어냈다.
1994년 한국무역협회 회장에 취임, 재임기간 동안 1조 2000억원 규모의 코엑스 건립을 주도했다. 한미재계회의 한국측 회장을 맡아 한미간 통상마찰을 완화하는 데도 일조했다. 한미 간 친선과 상호 이해를 위해 민간단체에 사재를 던진 일도 적지 않았다.
기업가이자 경제인으로서 성공비결과 경영철학을 묻는 이들에게 송강은 “국제적인 안목이 없으면 큰 사업을 이끌기 어렵다. 거기에 더해 스테이트맨십을 가져야 한다. 기업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폭넓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은 민간에 맡겨야 하고,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에는 정부가 할 수 없는, 그러나 꼭 필요한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많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송강은 성과를 탐하지 않았다. 2003년 LG그룹에서 분가해 LS그룹을 출범시킬 때 자신이 창업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호남정유를 미련없이 넘겨줬고, 월드컵도 유치 역할만 수행하고 월드컵 조직위원장 자리는 고사했다.
송강은 이렇게 말했다. “대사(大事)는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리저리 얽혀서 어려워진다. 가지려 하면 어려워지고, 버리면 더 큰 게 생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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