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가 개봉한 뒤 뜻밖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관객들이 지도 앱과 플랫폼을 통해 세조와 한명회의 무덤에까지 찾아가 분노와 감정을 쏟아내는 이른바 '과몰입'의 연쇄 반응이다. 스크린 밖으로 번져나간 이 감정의 파동은 단순한 화제성을 넘어 한 인물의 비극이 얼마나 깊게 관객의 마음을 건드렸는지를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단종 이홍위를 연기한 배우 박지훈이 있다. 감정을 눌러 담은 눈빛과 끝내 무너지는 순간의 표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서사를 남겼다.
"감독님께서 제안하셨을 때 사실 삼고초려를 하셨어요. 단종을 제가 연기해서 스크린에 설득력 있게 감정 표현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고 유해진 선배님과 붙는 신이 많다 보니 선배님이 주는 에너지를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동등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가 가장 고민됐어요. 마지막 미팅에 그때 감독님이 '지훈아 단종은 너여야만 해'라고 하셨어요. 집에 가는 길에 창밖을 보는데 영화 한 편이 끝난 것처럼 그 말이 계속 맴돌더라고요. '어쩌면 감독님을 믿고 해봐도 되지 않을까. 내가 에너지를 못 낼 이유가 뭐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단종이라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위해 박지훈이 가장 먼저 붙잡은 과제는 체중 감량이었다. 화면 안에서 '버석한' 인상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살을 좀 빼야겠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몇 kg까지 빼오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건 아니었어요. 그냥 제 욕심이었죠. 될 수 있는 데까지 빼보자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뼈밖에 없네'라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준비 기간 두 달 동안 사과 한 조각 먹으면서 지내고 잠도 거의 못 자고 대본만 계속 봤어요. 방 안에 틀어박혀서 좀 피폐하게 지냈죠.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됐어요. 그 버석한 느낌을 표현해내고 싶었거든요. 15kg 정도 감량했어요."
"먹는 장면이 많았는데 먹으면 자꾸 게워내더라고요. 뭘 조금만 먹어도 속이 울렁거리고 그런 날들이 꽤 있었어요. 그중에 하나 기억나는 게 다슬기국 먹는 신이었는데 염분이 확 들어오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 거예요. 정말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 하하. 작품을 찍는 도중이 아니었다면 그 국에 고봉밥을 먹었을 텐데 싶더라고요."
첫 촬영부터 강한 감정이 요구되는 장면이었다. 박지훈의 첫 촬영은 극 중 한명회와 마주하는 신이었다. 캐릭터의 두려움과 긴장이 고스란히 드러나야 하는 순간이었다.
"제 첫 촬영이었어요. 한명회를 마주하는 장면이었는데 무서워서 못 보겠다고 했더니 감독님이 '편한 대로 해. 마음 가는 대로'라고 해주셨어요. 그래서 촬영에 대한 긴장감은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죠. 목소리 떨림이나 근육이 떨리는 건 정말 무서워서 나온 것 같아요.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순간 감정에 몰입하다 보니까 체중 감량이 돼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근육 떨림이 더 잘 보이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저도 하나 배워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이홍위라는 인물이 극 안에서 겪는 변화는 단순히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는 성장이라기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감정이 축적되며 조금씩 성숙해지는 과정에 가까웠다.
"감정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했지만 신을 찍으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어요. 전날 뭐 찍었지. 이어지는 감정이니까 이렇게 해볼까 고민은 하지만 사실 그렇게 많이 준비하고 현장에 가는 편은 아니에요. 현장에서 주변 인물들이 하는 걸 보고 흡수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선배님들이랑 감정을 쌓고 맞춰가다 보니까 결국 마지막에는 그런 시너지가 있었던 것 같고요.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터지는 신도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마지막 장면을 앞두고 유해진과 박지훈은 오히려 일부러 서로를 피했다. 감정이 먼저 터져버릴까 봐 촬영 전부터 마음을 다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 리허설을 맞추면서 이미 많이 울었어요. 촬영 날 선배님께 인사드리러 갔는데 선배님이 안 보이시더라고요. '아 나를 보면 터지겠구나. 감정을 절제하고 계시는구나' 싶어서 재빠르게 인사만 하고 나왔던 기억이 있어요. 리허설을 다시 맞추는데 문이 열리면서 들어오는 순간의 에너지가 정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제가 필모가 많은 것도 아니고 연기 생활이 오래된 것도 아닌데 '살면서 이런 감정을 또 느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죠. 선배님이랑 눈이 마주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 장면의 에너지가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여운이 가시지도 않은 채 다시 꺼내야 하니까 그때부터는 눈이 그렁그렁했어요. '여기서 울면 안 된다'고 계속 스스로를 붙잡았죠."
유해진과의 호흡은 영화 속 관계처럼 자연스럽게 쌓여갔다. 일부러 다가가거나 관계를 만들려고 애쓴 것이 아니라 촬영장을 오가며 나눈 대화와 함께 보낸 시간이 감정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쌓인 감정이 마지막 장면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는 게 박지훈의 기억이다.
"선배님께 계획적으로 다가가거나 잘 보이려고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다가가지 않은 게 오히려 좋게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강가를 걸으면서 산책도 하고 촬영장 오르내리면서 선배님들이랑 이야기 나누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감정이 쌓였어요. 작품이랑 같이 쌓여간 거죠. 마지막에는 결국 에너지가 터져 나온 게 아닐까 싶어요. 일부러 만들어가거나 계획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장항준 감독과의 작업 역시 박지훈에게는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 현장에서의 모습은 방송에서 보던 이미지와는 또 다른 결이었고 배우의 표현을 존중하는 연출 방식이 신뢰를 줬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현장에서 어떤 분이실지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배우가 표현할 수 있도록 굉장히 열려 계세요. 디렉션을 주실 때도 왜 그런지 납득이 가게 설명해주시고요. 그런 부분에서 '아 거장 감독님이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장에서 말씀이 아주 많으신 편은 아니고 생각보다 카리스마도 있으셨어요. 방송에서 보던 이미지랑은 또 다른 면이었고 개인적으로는 '멋있다. 이런 면도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워너원 출신이라는 이력은 그의 커리어를 설명하는 하나의 출발점이다. 현재는 배우로서의 행보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음악에 대한 가능성 역시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가수 활동도 생각이 없지는 않아요. 작품들도 계속 들어오고 있어서 중심은 연기지만 앨범도 생각은 하고 있어요.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어요. 아직도 아이돌 팬분들이 계시니까요."
최근 워너원이 다시 모인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팬들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박지훈은 구체적인 계획을 조심스럽게 아끼면서도 오랜만에 멤버들과 다시 만나는 자리에 대한 설렘을 숨기지 않았다.
"일단은 예능을 찍고요. 멤버들이랑 다시 모여서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처럼 시간이 지난 지금의 우리를 보여주는 느낌이 될 것 같아요. 디테일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기다려주신 팬분들께 작은 선물 같은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군 문제나 중국에 있는 멤버들 때문에 다 같이 모이지는 못하지만 가능한 멤버들은 흔쾌히 해줬고요. 민현이 형이랑 성운이 형이 중심이 돼서 모아줬어요. 그 부분은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배우로서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는 이번 작품을 통해 얻은 감정부터 떠올렸다.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스스로에게 남은 것이 분명하다는 대답이었다.
"훌륭한 선배님들로부터 많이 얻어가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이상으로 값을 매기기는 어렵고요. 흥행 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이 작품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지 않은 박지훈'으로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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