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타냐 바이런 지음 |황금진 옮김 | 동양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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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사진=동양북스 제공]
마약중독자 임신부에 의해 머리를 난타당한 할머니가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것은 그녀가 고작 열 다섯 살 때의 일이다. 타냐 바이런은 그 이후 인간의 전두엽에 천착했고, 현재 영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임상 심리학자가 됐다.
바이런이 임상심리사 실습생 시절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완성한 이 심리 상담집은 '문학을 능가하는 비문학' '임상의학을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올리버 색스를 떠올리게 한다' 등의 평가를 받으며 영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2년여간 아마존 심리 분야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 책의 원제는 '해골 찬장'(The Skeleton Cupboard)으로, 이는 '집안의 치부 혹은 비밀'을 뜻하는 은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정상적인 가족 신화에 물음표를 던진다. 예컨대 우리가 말하는 '정상성', 이를테면 인자한 아버지와 너그러운 어머니, 품성 고운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누가 봐도 콩가루 집안이라 할 만한 집뿐 아니라 누구나 선망하는 화목한(어쩌면 그냥 화목해 보일 뿐인) 가정도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성원 간의 연민과 원망,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로 뒤범벅돼 있다. 바이런은 그 리얼리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모든 가정, 모든 사람에게는 숨기고 싶은 이야기(치부나 비밀)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저자는 상담자와 환자, 병의 진단과 치료의 경계도 허문다. 임상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가 마치 신처럼 그려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저자는 자기 자신의 흔들리는 내면 심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며 환자와 의사 사이의 경계를 지워 나간다. 이밖에도 저자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노인, 부인에게 버림받고 자식들을 볼 수 없게 된 중년 남자,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유명 인사 등 정상으로 보이지만 기이하고 충격적인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 스토리를 심리 분석과 함께 소개한다.
치료의 핵심은 권위있는 의사의 자의적 판단이나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환자의 인간관계 그물망을 파악하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448쪽 | 1만7500원
◆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콜린 엘러드 지음 | 문희경 옮김 | 더퀘스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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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사진=더퀘스트 제공]
삼청동, 가로수길, 망리단길, 익선동 골목길, 서울대입구 샤로수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서울의 '핫'한 길들이다.
왜 사람들은 번듯하고 번쩍이는 새 건물이 즐비한 곳이 아닌 좁고 구불구불한 길, 작은 가게들이 늘어선 길을 찾을까? 인지과학자이자 신경건축가인 콜린 엘러드는 뉴욕 한복판에서 '도시 걷기 실험'을 실시했다. 도심 한 블록을 다 차지한 대형 식품매장 앞길과 아직 개발이 덜 되어 작은 상점들이 들어찬 길 두 곳에서 참가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무미건조한 대형빌딩 앞에서는 조용하고 움츠러들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고, 활기찬 거리에서는 활발하고 수다스러웠다. 엘러드는 "인간은 '곡선'에서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며, 굽은 길모퉁이는 앞으로 다가올 것을 궁금해하며 기대하게 만든다"며 "건물 하단 3미터 정도만 외관과 물리적 구조를 바꿔도 도시를 이용하는 방식에 극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일상생활 속 공간의 심리학은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등지의 대형 카지노에도 적용된다. 이 곳에서 벌어지는 게임은 도박기계의 프로그램을 비롯해 카지노 내부와 건물을 구석구석 파고든다. 도박장의 목표는 사람들이 돈을 잃는데도 돈을 따고 있다는 환상 속에 머물도록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카지노 입구는 안쪽이 안 보이는 곡선으로, 슬롯머신은 자신을 은폐하면서 주변을 살펴볼 수 있도록 배치되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이 건축을 통해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어떻게 만들었으며, 그 두 공간은 우리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인간의 다양한 정서를 중심축으로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심리지리학'(Psychogeography)이라고 부르며 개인사와 대중의 관심사,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을 재치있게 엮어낸다.
"우리를 감시하고 지켜주는 센서와 작동장치의 보호망에 자발적으로 걸려드는 시대에도 '공간'에는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372쪽 | 1만7000원
◆ '철학, 기쁨을 길들이다'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 이세진 옮김 | 와이즈베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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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기쁨을 길들이다' [사진=와이즈베리 제공]
"관계에 더 이상 기쁨이 없다면 그 관계가 정말로 나에게 좋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반복적으로 슬픔을 느낀다면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물어보라. 그런 감정은 대부분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살지 못할 때 찾아온다. 관계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분별이라는 작업이 필요하다."(본문 137쪽)
프랑스의 세계적 철학자이자 종교사학자인 프레데릭 르누아르가 동서양 현자들의 가르침과 자신의 생생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순수한 '기쁨'을 찾는 인문철학서를 내놓았다.
기쁨이라는 감정은 내면에 깊숙이 파고들어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을 느끼게 하는 위력이 있다. 스피노자는 이를 모든 윤리의 토대이자 궁극적인 목적으로 보았으며, 니체는 기쁨을 인간 행위에 가치를 부여하는 근본적인 윤리 기준이라고 보았다.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고통, 불안,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에 쉽게 압도되면서도 순수한 기쁨을 누리는 데는 한없이 서투르다. 설사 기쁨을 느낀다 해도 감각적인 쾌락을 그 것이라고 착각하기 일쑤다.
저자는 기쁨에 이르는 방법으로 '특정한 정신 상태'와 '생활 태도'를 강조하며, △주의 집중 △현존 △신뢰 △마음 열기 △놓아버리기 등 다양한 실천적 지식을 전한다. 다만, 저자는 "이런 실천에서 비롯된 기쁨은 일시적"이라며 지속 가능한 기쁨으로 가는 길도 친절히 설명한다.
"사회, 신, 가치관 등 우리 자신을 옥죄는 고리들을 끊어내 왜곡없이 자신의 본질에 다가가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는 외부 상황에 쉬이 흔들리며 조그만 일에도 일희일비하는 현대인들에게 죽비소리같은 조언이다.
212쪽 |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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