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조업의 자존심, 소니의 부활은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는 처절함에서 비롯되고 있다. 한 때 우쭐했던 관료주의적 사고와 관행은 모두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게임·반도체·금융·음악 등 4개의 축을 중심으로 8개 사업 부문이 흑자를 시현하면서 약진의 발판을 구축했다. TV의 경우는 한국·중국과의 경쟁을 회피하기 위해 프리미엄에만 집중, 이 부문에서 1위를 탈환했다. 이를 두고 소니의 ‘프리미엄 시프트’라는 용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삼성전자와 맺고 있던 LCD 패널 합작 사업도 접었다. 판매량에만 의존하던 사업은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 부문도 고급 기종에만 집중하여 수익을 끌어 올리고 있다. 문제는 한자리수 점유율로 떨어진 스마트폰 사업의 재건이다. 소니의 자존심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더 많다. 가전 주력기업인 히타치는 한국·중국에 밀린 전자 부문 사업을 포기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주력 사업이었던 반도체·디스플레이·TV·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 등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기술우위가 확실한 대형 공장설비, 풍력발전, 엘리베이터 등 덩치가 큰 산업을 주력업종으로 선정하였다. 그 결과 연간 8∼9조 엔의 매출에 5000∼6000억 엔의 영업이익을 실현해내고 있다. 파나소닉의 경우도 2017년 상반기 매출액으로 주력인 가전(1조 3274억 엔) 부문보다 차량용 부품(1조 3430억 엔)이 넘어서는 등 주력업종 전환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잃어버린 20년 기간 중 수천억∼수조억 엔의 적자에 시달렸던 파나소닉·미쓰비시전기·후지쯔 등 가전업체와 도요타·혼다·닛산·스바루·이스즈 등 자동차 기업에 덴소·신에쓰화학·TDK, 무라타제작소·도레이 등 부품·소재 기업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기업이 최근 10년 내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모두가 위기극복의 수단으로 본업(本業)을 포기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한국과 중국 기업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전략으로 선택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특히 기술적 우위에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발굴해 이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 수익 극대화를 실현해내는 전략적 수정이라고 봐야한다.
일본 기업의 이러한 변신은 우리 기업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엄청난 속도로 따라오는 중국에 대해 계속 우리 뒤에만 있으라고 하는 것은 가능치도 않고 그렇게 될 리도 없다. 더 이상 도토리 키 재기 식의 무모한 양적 규모의 경쟁은 무용지물이며, 우리에게 유리하지도 않다. 이제부터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중국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여 그들과 일정 수준의 격차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것이 보다 현명하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차 배터리, 프리미엄 가전, 수소차, 해양플랜트, 화장품, K-콘텐츠 등의 분야에 특화해야 한다. 일본 혹은 중국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추가적으로 찾아내는 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
제조업 강국이 되기 위한 중국의 욕심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반면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중국 제조업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핵심 기술의 유출에 대안 억제력을 더 강화해 나갈 것이다. 갈 길 바쁜 중국의 앞에 장밋빛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암초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중국의 의중을 꿰뚫고 있으면 우리의 행동반경이 그만큼 넓어지고, 손해 보지 않는 전략·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진다. G2 통상 전쟁에 따른 새우등 타령만 하지 말로 철저한 손익 계산을 통해 피해는 최소화하고 반사이익까지 시야에 넣어야 한다. 죽는 길보다는 사는 길에 설 수 있는 큰 안목과 디테일한 지혜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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