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취약계층의 주택마련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공급' 제도가 오히려 서울 주요 청약 단지에서 이들을 소외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기과열지구 내 분양가 9억원 초과 주택은 특별공급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다보니 이른바 '로또단지'에서는 제도의 수혜를 받아야 할 이들이 체감할 만한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사회계층 중 무주택자의 주택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청약경쟁 없이 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는 특별공급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주택 건설량의 3~20%를 특별공급 물량으로 배정한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3자녀 이상 다자녀가구, 신혼부부, 노부모 부양가구, 철거주택 소유자 및 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를 비롯해 세종시, 신도시, 혁신도시 등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 종사자 등이 특별공급 주요 대상자다. 특별공급 청약횟수는 평생 1번으로 제한되지만 많게는 200대 1에 달하는 살인적인 청약 경쟁률 없이도 내집마련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특별공급에서 투기과열지구 내 분양가 9억원 초과 주택은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원에 육박하고,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어 있는 상황이다보니 서울에서 살 만한 지역의 특별공급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불만이다. 실제 KB부동산 월간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8억9751만원이며, 현재 서울 25개 자치구와 경기 과천, 세종 등 27개 지역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다.
최근 로또청약으로 불린 서울 강남구 '개포 프레지던스 자이'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단지 일반분양 255가구 가운데 다자녀, 노부모 봉양 등 특별공급으로 배정된 가구는 23가구다. 전부 방 1개로, 공급면적 39㎡ 물건이다. 39㎡는 가장 저렴한 1층 분양가가 7억3100만원, 가장 비싼 12층 분양가가 8억3300만원으로 모두 9억원을 초과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적은 평수인 45㎡만 하더라도 가장 낮은 1층 가격이 9억100만원이라 특별공급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랜 고민 끝에 개포 프레지던스 자이 청약을 포기한 주부 김모씨(35)는 "강남이 분양가가 비싼 건 알았지만 막상 39㎡를 보고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다자녀가구와 부모님을 모시는 3세대 가구는 사실상 방 3개가 필요한데 나온 물건은 전부 원룸뿐이라 희롱당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수요 측면에서 무용지물인 건 물론이고, 투자 측면에서도 수요자가 있을까 싶어 결국 청약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약관계자는 "9억원 이하라는 특별공급의 가격 조건 때문에 서울 주요단지에서는 특별공급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 알짜 물건이 한정적"이라며 "때문에 해당 시장은 실수요 목적보다는 전매제한기간을 넘긴 뒤 시세차익을 남기고 팔 것을 염두에 둔 계산이거나 갭투기 수요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봐도 제도의 허점이 드러난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혼인기간이 5년 이내인 부부 가운데 자녀가 있고 무주택자인 경우에 지원 자격이 된다. 그러나 월평균 소득이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소득보다 낮아야 한다. 맞벌이는 120% 이하다. 지난해 말 기준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소득은 3인 이하 540만1814원이다.
개포 프레지던스 자이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배정된 39㎡ 가운데 가장 저렴한 1층짜리 주택의 분양가(7억3100만원)에 담보인정비율(LTV) 40%를 적용하면 약 4억5000만원의 현금이 필요한 셈이다. 그러나 30대 맞벌이 신혼부부가 이러한 소득 조건하에서 5억원에 가까운 분양자금을 갖고 있다는 건 불가능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특별공급의 9억원 초과주택 제한 한도를 서울 한 군데만 맞춰 수정하자니 지역적 형평성에 맞지 않고, 그냥 두자니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이와 같은 정책 소외현상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며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국토부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손질에 나섰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사가 금액에 맞춰 특별공급을 일괄적으로 배분하다보니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법(9억원 초과, 전용 85㎡ 이하)을 바꾸기는 어렵고, 시공사와 특별공급 물량의 세부사항을 조율하는 방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시공기술로 10평대 아파트도 방 3개짜리로 얼마든지 뽑을 수 있다"면서 "강남 같은 특수 지역의 경우 특별공급 물건에 이러한 설계를 적용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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