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업 간섭보다 독립성부터 확보해야"..한진칼 영향력 '주목'(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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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기자
입력 2020-02-0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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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단체 '국민연금 독립성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 열어

  • 국민연금 수탁전문위 이달 내 위원 구성...3월 한진칼 주총 최대 관심

당장 오는 3월 주총부터 국민연금이 경영참여 선언을 하지 않고도 주주제안이나 이사 해임 청구 등이 가능해지면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상법·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개정되고 지난해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까지 도입되면서 국민연금이 마음만 먹으면 국내 주요 상장사들의 지배구조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경제단체들은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에 앞서 독립성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막대해진 반면 여전히 국민연금은 정부 지배 하에 있어 관치(官治)와 연금 사회주의 논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비판이다.

이런 가운데 내달 말로 예정된 한진칼 주총에서 국민연금 수탁책임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할 지 주목된다.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겸 국민연금기금위 부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새해 첫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 마스크를 쓰고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조 부위원장 뒤로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방기 규탄 및 주주 활동 촉구 피케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단체들 "국민연금 목적은 미래소득 보장, 기금 다른 곳 사용 우려스러워"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6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국민연금 독립성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를 열고 국민연금의 기업 간섭 보다 정부 독립성을 강조했다.

권태신 한경연 원장은 개회사에서 "이제 우리 기업들은 해외 헤지펀드뿐 아니라 국민연금의 경영권 간섭까지 받게 됐다"며 "문제는 이런 공격을 우리 기업들이 별다른 방어수단 없이 감내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국민연금 설립 목적이 국민들의 미래소득 보장에 있는 만큼, 정부가 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조 발제를 맡은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의 일탈을 지적하며 "일부 기업의 위법 행위는 관련법을 통해 처벌하면 된다. 정부가 나서서 국민연금을 이용해 기업들을 제재하겠다는 발상은 기금 설립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가칭)국민연금위원회’를 복지부에 설치해 감독 기능만 수행하게 하고 △(가칭)국민연금위원회 산하에 기금운용위원회를 두되 세계 최고의 기금운용 전문가들로만 위원들을 구성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집행 역할을 하는 국민연금 산하 위원회 설립 근거를 문제 삼았다. 그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와 투자정책전문위원회는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설치 근거를 상위법이 아닌 시행령에 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민연금 의사결정의 한 축인 지역가입자단체에 농어업인, 자영업자, 소비자, 시민단체들까지 넣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단지 위원회 구성이 다양하다고 해서 독립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어 복지부 역할은 감독 기능에 국한하고 시민단체들도 위원회를 통한 과도한 기업경영 개입 충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관훈 선문대학교 법경찰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지닌 거버넌스 문제를 짚었다. 기금의 투자·운용이나 기업경영에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위원들이 참여하고 있기에, 결국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정치적 판단에 휘둘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성현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본부장은 기금운영의 독립성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국내 주식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기금운영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정치적 이유로 기업 경영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 이달 본가동...내달 한진칼 주총서 영향력 초미관심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전문위)가 이달 내 위원 위촉 등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수탁전문위는 2018년 7월 말 국민연금이 주주권행사의 투명성·독립성 제고를 위해 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구성한 조직이다. 기존에 국민연금 의결권행사를 자문하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확대, 개편했다.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탁전문위는 '안건 부의 요구권'이란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민간 전문위원 3명 이상의 요구로 이사 선임이나 합병 등 주요 주총 안건에 대한 찬성, 반대, 중립 등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민연금의 주주권과 의결권은 원칙적으로 국민연금의 실무투자기구인 기금운용본부의 내부 투자위원회가 행사한다. 하지만 연금공단이 의결권 행사의 찬성 또는 반대, 주주권 행사의 이행 여부 등을 판단하기 곤란한 사안의 경우, 기금운용본부의 분석 등을 거쳐 요청하면 수탁전문위가 결정한다.

이에 수탁전문위는 3월 말에 몰려 있는 주요 기업의 주총에서 본격적인 목소리를 낼 전망이다. 특히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의 칼자루를 쥔 터라,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수탁전문위는 2019년에 휠라코리아 분할계획서 승인 안건, 현대중공업 '분할계획서 승인·이사 선임' 안건 등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현재 한진칼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3~4%로 추정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남매 간 경영권 대결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누구 손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대세가 바뀐다. 한진칼은 다음 달 말 정기 주총을 열고 조 회장의 대표이사 연임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한편 조흥식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5일 열린 2020년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진칼 의결권 행사와 보유 지분에 대해 "개별 기업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한진칼 주총 의결권 행사에 대해선 "국민들이 원하는 좋은 방향으로 돼야 할 것"이라며 "기업이 이윤 추구하는 곳이지만 기업이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받아 들여주고, 기업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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