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푸라기라도…' 정우성, 타인의 '기대'를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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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0-02-2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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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김용훈 감독부터 상대 배우인 전도연 그리고 스태프들까지. 극 중 태영이 이토록 능청스럽고 지질하며 인간적일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저는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태영이 이렇게(유머러스하게) 보였어요. 어두운 이야기 속 유일하게 희화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 여겼죠. 그가 가진 관계나 생각 그리고 허점을 극대화해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의 태영과 연기를 본 분들이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영화는 인생 마지막 기회인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최악의 한탕을 계획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하드보일드 범죄극. 극 중 정우성(47)은 출입국 관리소 공무원 태영 역을 연기했다. 사라진 애인 때문에 사채 빚에 시달리며 한탕의 늪에 빠지는 인물이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태영 역의 정우성[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처음 현장에서 태영을 표현했을 때는 모두 당황하고 놀라는 모습이었어요. 배우를 보고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기 마련인데 특히 정우성에 관해서는 그런 이미지나 기대가 더 큰 것 같아요. 태영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니 모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에요. 하지만 저는 이제까지 정우성이 쌓은 이미지나 타인의 바람을 깨고 싶었어요. 그럴 수 있었던 현장이기도 했고요."

김용훈 감독은 단편 '삭제하시겠습니까?' 다큐멘터리 '남미로 간 세친구' 등 다양한 작품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통해 첫 상업영화로 데뷔하는 그는 신인 감독답지 않은 유연한 태도로 현장에 임했고 열린 생각과 마음으로 정우성의 '다른' 태영을 받아들였다.

"김용훈 감독님은 제가 왜 태영이란 인물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지 충분히 듣고 빨리 받아들이더라고요. 제가 만든 태영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또 애정하고 지지해주셨어요."

8명의 인물이 얽히고설킨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속 정우성의 역할은 '쉼표'와 '궁금증'이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 거침없이 달렸다.

"영화가 무겁고 어둡다 보니 태영으로 하여금 관객들이 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냥 웃긴 코미디는 아니지만 일정 부분 '여백'이 되는 인물인 거죠. 또 그를 통해 연희(전도연 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야 하고요. 연희가 중간부터 등장하다 보니 그의 존재감이 느껴지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지푸라기라도...' 스틸컷, 붕어(박지환 분)와 태영(정우성 분)[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정우성이 생각하는 '쉼표'와 '여백'은 붕어(박지환 분)와의 호흡으로 더욱 극대화될 수 있었다. 붕어는 태영의 조력자로 그와 완벽한 '티키타카'를 선보여 관객들에게 재미를 안겨주는 인물. 정우성이 그리고자 하는 태영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붕어는 태영이 유일하게 쥐락펴락하는 인물이잖아요. 붕어기 때문에 태영이 호들갑을 떨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처음엔 붕어 역의 (박)지환 씨도 제 연기를 보고 '우성 선배가 저렇게 연기를 하네?'라며 혼란스러워했어요. 제가 장난도 치고 애드리브도 하니까요. 만감이 교차하는 거 같더라고요. 하하하. 붕어와 연기할 땐 호흡도 달리하고 즉흥적으로 만드는 장면들도 많았어요. 나중에 지환 씨가 '재밌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건 몇 번 해볼 수 없는 연기'라고 말해줘서 고마웠죠."

정우성의 연기에 당황한 건 박지환뿐만이 아니었다. 태영의 연인인 연희 역의 전도연도 마찬가지. 정우성은 전도연의 성대모사까지 해가며 당시 상황을 재현해 인터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전)도연이는 '어떡해? 너 저래도 돼?'라고 하기도하고. 하하하. '난 그래도 돼. 태영이니까' 정우성의 고뇌가 아니잖아요. 태영이니까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었죠. 함께 연기하면서 도연이는 오히려 제가 궁금해졌나 봐요. 업계에 함께 있다고 해도 작품으로 만나지 않았으니까. 그냥 오가면서 '아, 전도연이네' '정우성이네' 하고 알고 지냈으니까요."
 

영화 '지푸라기라도...' 정우성[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그는 현장에서 만난 전도연에 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능력만큼이나 현장의 태도가 훌륭했다고 치켜세웠다.

"우린 만나는 장면이 몇 없어서 몇 신만에 태영과 연희의 케미스트리를 만들어야 했어요. 몇 장면 안 되는데도 두 사람의 서사와 갈등 그리고 관계가 느껴져야 했죠. 두 배우가 처음 만나 작업을 하니 서로가 각자의 작업 방식도 있고 기대치도 있잖아요. 저는 현장을 임하는 '배우' 전도연의 능력 보다 그의 자세를 더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번 작품으로 그걸 확인했고 매우 큰 감동을 받았죠. 현장에 대한 애정과 책임 영화 전체에 관한 발란스와 깊은 사고가 대단했어요. 다른 작품도 함께 찍어보고 싶어요."

앞서 전도연은 이번 작품으로 정우성에 관한 호기심이 커졌다고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정우성 역시 마찬가지. 그는 "언제든 다음 기회가 있다"고 말해 영화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감독 연출작에 출연시켜달라는 전도연의 말에는 단호히 '안 된다'고 말했던 그. 농담처럼 이를 언급하자 정우성은 "그 작품에는 전도연이 할 만한 캐릭터가 없다"며 또 한 번 단호한 반응이다.

"내일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하지만 살아있는 한 또 만나겠죠. 모일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되어야 하는 거고요. 각자 하던 대로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시나리오를 만날 거고 또 우린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는 동료니까. 충분히 만날 수 있죠."
 

'지푸라기라도...' 정우성[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영화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처절한 삶을 사는 이들의 순간을 조명한 작품. 인물들의 처절한 삶을 이야기 하던 도중, 정우성에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있었죠. 어릴 때. 자퇴했을 때였어요. 또 막연한 기대도 있었죠. 절박한 시기였지만 아무거나 잡지 않았던 거 같아요. 더 많이 고민했고 어떤 사람이 될지 거듭 생각했죠. 지금 돌아보면 아끼는 감정 중 하나에요. 그 외로움을 잘 즐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단한 세월을 지나온 선배, 정우성에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이들을 위해 한마디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정우성은 짧게 고민한 뒤 "없다"라고 했다. 조심스럽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대도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제가 함부로 조언할 수 없어요. 지금은 막연함조차 가질 수 없는 시대인 거 같아요. '포기 세대'라고들 하잖아요. 현실이 그들을 그렇게 내몬 거 같아요. 막연한 기대조차 하지 못하는 냉정한 시대. 더 비참한 건 어떤 조언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거예요. 어느 순간 선배, 어른이 사라졌잖아요. 기성세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에요. 먼저 살았다는 이유로 관계하지 않은 이에게 나의 삶을 이야기 하며 조언하는 게 굉장히 무서운 일이 될 수도 있어요."

정우성의 차기작은 '정상회담'(감독 양우석)이다. 현재 후반 작업 단계를 거치는 이 작품은 빠르면 상반기 관객과 만날 예정. 또 지난 10일부터 신작 '보호자(가제)' 촬영에 들어갔다. 정우성의 연출작이다.

"즐거운 작업이에요. 이제 '보호자' 촬영이 다가오는데('보호자' 크랭크인 전 인터뷰) 빨리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또 한편으로는 내가 선택한 촬영지들이 베스트였나 의심도 들고 그래요. 만감이 교차한다고 할까. 개봉일은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개인적 바람은 올가을 개봉을 목표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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