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주식시장에서 점점 커지는 일본은행의 영향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맹목적인 주식 매입이 시장 왜곡을 심화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꼬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적극적 매입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증시 하락으로 일본은행의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정책 신뢰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년째 ETF 투자했지만 포트폴리오 빨간불
일본은행 간판 닛케이지수는 코로나19 공포 속에 18일 1만6726.55에 마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시장 관측통들은 일본은행의 ETF 손익분기점이 닛케이 1만9500 수준으로 보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역시 지난 10일 일본 국회 질의에서 ETF 포괄손익이 제로(0)가 되는 선이 닛케이 1만9500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닛케이가 1만9500 아래로 떨어지면 일본은행의 보유 ETF평가액이 마이너스로 돌아선다는 얘기다.
물론 일본은행은 시중 은행과 달리 수익을 내야 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손실을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일본은행의 손실 확대가 아베노믹스 핵심인 일본은행의 대규모 통화부양책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NLI 연구소의 이데 신고 수석 주식전략가는 로이터에 "일본은행이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은 통화정책으로 증시를 지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방증한다"면서 "일본은행은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하고, 그렇게 많이 ETF를 매입해야 했는지 검증받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SMBC 닛코 증권의 수에자와 히데노리 애널리스트는 "일본 공적연금의 손실과 맞물릴 경우 정치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의 ETF 매입에도 불구하고 증시 하락을 막지 못할 경우 일본 증시 큰손인 공적연금 손실도 함께 늘어나면서 국민이 비용을 떠안는 데 대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픽=인베스팅닷컴]
◆ETF 매입 늘어날수록 시장 왜곡 우려 높아져
최근 일본은행은 코로나19로 인한 증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ETF 매입 속도를 부쩍 높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지난 10일까지 7거래일 동안 4거래일에 걸쳐 시장에서 1000억엔 규모로 ETF를 사들였다. 일일 700억엔 수준의 매입액을 대폭 끌어올린 것이다. ETF 매입 규모를 배가하겠다고 밝힌 다음날인 17일에는 1204억엔어치를 사들여 일일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 같은 양적완화와 함께 ETF를 매입하는 포괄적 완화정책에 나서기 시작한 건 2010년 12월부터다. 그 사이 ETF 매입 목표는 세 차례나 상향됐고, 일본은행의 ETF 보유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32조엔까지 불어났다. 중앙은행의 주식 매입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다.
이미 일본은행은 일본 상장기업 절반에서 대주주에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 대주주는 상위 10위 이내 주주를 의미한다. 이대로 주식 매입이 계속되면 올해 말 일본 증시에 상장된 주요 기업들의 최대 주주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주식시장 내 일본은행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은행은 주주권 행사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이들 기업에 대한 경영 감시가 소홀해질 수 있어서다. 기업 실적을 고려하지 않는 일본은행의 맹목적인 주식 매입이 시장의 건전성을 해치고 왜곡을 심화한다는 지적도 있다.
출구전략이 어렵다는 점도 큰 문제다. 일정 시간이 지나 일본은행이 ETF를 팔아야 할 경우 주가 폭락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 일본은행이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보유 ETF를 처분하는 데는 6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일본 현지 언론은 보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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