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시포스를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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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입력 2020-04-23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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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까지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진자 수는 250만명에 근접했다. 순식간이지만 아직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고 백신 등 마땅한 대응 치료법을 찾지 못하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다.

20세기 이후 1918년 스페인 독감부터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까지 코로나19 이전 기록에 남는 대유행병(Pandemics)은 9차례가 있었다. 감염자 수로는 2009년 신종플루(Swine flu, H1N1)가 750만~14억명, 사망자 수로는 1918년 스페인 독감이 2000만~5000만명이라는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도 전문가가 당황하는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보여주고 있는 폭발적인 전염력과 고령과 노약층에 대한 선택적인 발병과 사망률의 특성 때문이다. 이 특성은 역사상 유례없는 사회적 거리 두기, 지역 폐쇄, 산업활동 마비 현상을 불렀고 결국 주요 국가 1분기 경제 지표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고령자에 대한 코로나19의 선택적인 병증 발현 때문인지, 뉴스에 폐쇄된 요양병원과 대비하여 클럽에서 밤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장면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보면서 고령자와 노약자가 전염성 질병에 취약한 것은 당연하지만, 세계적적으로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유독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가 젊은 층에는 무증상에 가까운 선별적 병증을 보여주는 것은 인구 문제와 관련해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큰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당장의 경제적 충격도 문제지만 경제 구조에 장기적인 영향과 변화가 발생하는 것이 사실 더 심각하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식시장은 뉴욕증시 S&P500 지수가 당시 저점에서 3배 이상 상승하는 등 화근이 된 금융시장이 외견상 회복되었지만, 세계의 실물경제는 저성장·저금리· 저물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위기의 충격이 경제주체들의 위기 인식 행태를 바꾸고 경제활동을 약화시키며, 금융위기 이후의 경제 성장추세는 이전 추세에서 12% 하향 이탈했다고 보고했다. 이렇게 큰 위기는 경제주체들에 큰 트라우마를 남긴다.

코로나19 위기의 트라우마는 사람, 즉 인구 측면에서 남을 가능성이 크다. 2019년 유엔은 세계인구 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 세계 대부분 국가를 대상으로 심층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고령화는 선진국에서 현저하게 속도가 빠르다. 2019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 세계는 9.1%였는데 유럽 18.8%, 북미는 16.4%를 보였고 일본 28%, 독일 21%, 이탈리아 23%, 한국은 14.9%를 보였다. 유엔이 주목하는 고령화 지역 분포와 최근 각종 통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코로나19 확진자 지도를 함께 보면 상당 부분 겹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밀한 데이터에 의한 연구가 아니어서 오차가 있을 수 있으나 '고령'이라는 단어가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세계 인구는 80억을 치닫고 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을 살면서 최초의 정치경제학자로 인정받는 맬서스는 ‘인구 과잉’을 원인으로 경제의 장래를 어둡게 전망했다. 그러나 맬서스의 어두운 미래는 기근이 원인이었지만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그의 주장을 맞지 않는 것으로 평가한다. 다만 폭증하고 있는 인구에게 다른 질적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바로 ‘소득의 불평등’과 ‘고령화’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등 주요 국제기구에 의해 글로벌 어젠다로 부각된 지 오래다. 이들 문제는 사회적·정치적으로 포퓰리즘을 불러일으키고, 노동이라는 생산요소를 제공하는 인간의 생산성을 약화시키며, 경제적 성장을 제약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부각되는 고령화를 둘러싼 인구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경제를 생산 측면에서 표현하는 것이 생산함수다. 그리고 가장 단순한 형태의 생산함수( Y= A *Lα* K(1-α)) 는 노동과 자본 그리고 기술, 제도 등의 생산 환경을 반영한 상수로 표현한다. 생산요소 중 자본은 산업혁명, 디지털혁명을 거쳐 4차 산업혁명까지 진화하며 인간을 배제한 기술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자본의 생산성 증대는 무어의 법칙 또는 황의 법칙을 따라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나 노동의 생산성은 정체나 쇠락의 길을 가는 중이다. 그 중요 원인이 고령화다. 또한 노동 절약적인 진화를 하는 산업기술과 함께 폭증하고 있는 80억 인구에게 줄 일자리도 현저하게 줄고 있고, 자본과 노동의 생산성 격차는 빈부격차와 부의 불평등 문제로 귀착된다.

월드이코노믹 포럼의 ‘글로벌 2020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화, 소득 불평등 경제환경은 다시 인간의 공중보건 문제를 발생시킨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면 악화한 노동조건, 생계 여건으로 대다수 노동자에게 만성질환이 만연하고 있고, 특히 각박한 생활환경은 우울·불안장애와 약물 남용 등으로 사람들을 내몰고 있어 노동 생산성은 더욱 위협받는 것으로 지적한다.

한편 선진국의 고령화와 후진국의 빈곤 문제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현상이 인구이동·난민문제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가혹하지만 가장 확실한 고령화 해결 방법은 고령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리라. 맬서스는 인구과잉의 적극적인 억제 방법으로 전쟁, 기아, 질병을 제안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핵전쟁 위험으로 전쟁은 상당히 억제되었고, 기아는 농업과 바이오 기술 덕분에 인구 억제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세 번째 대안인 질병, 즉 코로나19가 등장한 것은 우연인가? 인간의 힘을 넘어선 자연의 조절작용인가?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영감을 받아 찰스 다윈은 적자생존 원칙을 <종의 기원>에 담았다고 한다. 이래저래 섬뜩하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미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를 외치며 경제활동 폐쇄를 놓고 주지사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한편 생명 또는 생계를 놓고 선택하는 갈림길에서 생계를 선택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풀면 고령화도 해결하는 부차적 효과도 노린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노동자의 삶은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의 신화 - 요즘은 페스트가 더 유명하지만- 에 자주 비유된다. 노동이라는 큰 돌을 매일 반복적으로 밀어올리는 시시포스. 밀어올려야 할 돌은 더 무거워졌지만, 그에게도 피할 수 없는 고령화가 찾아온 것이다. 30년 노동을 마치고 은퇴한 베이비부머의 편견인지도 모르지만 코로나19 위기 이후 시시포스의 다가올 미래가 무척 걱정스럽다. 코언 형제 감독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생각난다. 늙은 보안관 역의 토미 리 존스는 신문을 보며 늙어도 세상이 이해가 안 된다며 중얼거린다. 필자도 중얼거린다. ‘시시포스를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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