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는 세계화가 가져온 어둠의 부산물이다. 세계화로 인해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 물자, 정보로 지구촌이 하나가 되고 장미빛 미래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세계화는 부, 권력, 정보를 양극화시고, 교통망 확대에 힘입은 팬데믹이 일상을 바꾸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전쟁이나 경제공황을 거치면서 국가가 시장과 시민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세계화로 인해서 국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팬데믹이 초래한 응급상황을 치료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국가가 귀환하였다.
21세기 국가는 새로운 능력을 필요로 한다. 전통적인 국가의 주된 임무는 군사적 위협과 대내적 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21세기 국가의 새로운 임무는 국경을 넘나드는 바이러스, 오염물질, 기후변화 등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되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핵무기나 첨단전투기, 항공모함이 아니라 국가의 복합적 안전관리능력에 달려있게 되었다.
새로운 국가모델로 네 가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첫째, 시장모델인 미국, 일본은 무능력하다. 조정 및 관리능력이 없는 국가는 시장과 시민사회에 모든 것을 맡겨 놓고 위기상황에서 무기력하다. 더욱이 미국은 국제협력을 외면하고 편협한 미국 우선주의만을 외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지도력을 상실하였다.
둘째,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영국 등의 사회복지국가 모델은 비효율적인 의료복지시스템과 무책임한 개인주의로 혼돈상태에 빠졌다. 낡은 복지제도와 비효율적인 국가관리 시스템은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다. 독일만이 그나마 촘촘한 사회안전망과 사회적 절제에 의해서 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 번째,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의 권위주의통제모델은 외형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모델의 표면적 성공은 격리, 봉쇄, 정보의 불투명, 사회적 신뢰결여 등을 대가로 한 것이다. 권위주의 통제모델은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의 현실화라는 우려를 낳는다. 권위주의통제모델이 일시적으로 성공적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투명성, 공개성, 시민사회의 견제가 없는 한, 새로운 위기에 대해 탄력적으로 대응을 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더구나 이 모델을 매력적인 대안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드물다.
네 번째 모델은 한국의 국가·사회 협치모델이다. 한국은 정보공개, 정책결정의 투명성, 공공의료인프라, 사회적 소통, 온라인 네트워크,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성공신화를 썼다. 그동안 한국이 구축해 온 국가관리 시스템, 정보화, 사회적 신뢰, 성숙한 시민사회가 어울려 새로운 모델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K 팝, K 드라마, K 영화에 이어 한국의 문화와 사회구조, 성숙한 시민의식이 공들여 빚어 낸 성과물이다.
인간안보모델은 한반도에서 새로운 협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경제교류협력에 의해 공동 이익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발판으로 군사, 정치분야에서 협력을 이끌어 내려는 기능주의는 오래 전에 벽에 부딪쳤다. 그리고 평화문제와 경제문제가 접목하는 영역에서 파급효과의 선순환을 만들어 내려는 평화경제론은 북한의 무관심으로 인해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남북인간안보협력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치군사문제를 접어두고 남북한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남북인간안보협력이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의선의 거점인 개성, 경원선의 거점인 원산, 서해안의 거점인 남포 등에 보건의료시설과 관광레저시설, 배후경제단지 등을 건설하여 이를 복합적 남북협력단지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또한 인간안보모델은 동아시아협력의 새로운 창구가 될 수 있다. 안보불안과 경제적 경쟁이 뒤엉켜 있는 동아시아에서 안간안보협력 플랫폼으로 새로운 협력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 보건·의료, 환경, 재난·재해 등 신안보위협에 대비하여, 동아시아 국가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공등대응책을 모색하고 정부, 기업, 민간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19 이후 세계질서 재편에 대비하여 한국의 인간안보모델은 글로벌협력의 표준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전략경쟁에 몰두하고 유엔이나 WHO 등 국제기구가 뒷짐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중견국가들과 더불어 새로운 국제협력의 규범을 만드는데 앞장서는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가모델을 뒤따라 잡으려던 시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질서의 규범과 표준을 세우는 일의 선두에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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