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건 20년간 구축한 진단 인프라와 정보기술(IT), 바이오를 결합한 기술력 덕분입니다.”
국내 병리학 분야 권위자로 알려진 이민철 씨젠 부사장은 29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씨젠의 성공신화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이 부사장은 대한병리학회 회장과 전남대 의대 학장을 역임한 후, 지난해 9월 씨젠에 합류해 현재 씨젠생명과학연구소 연구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36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씨젠에 들어온 이유는 제대로 갖춰진 실험실 때문이었다”고 운을 떼면서,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도 그동안 구축한 완전 자동화 시스템과 인공지능(AI) 기술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의 말처럼 20년간 세간에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씨젠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준비된 기술과 인프라로 빠르게 진단키트를 공급하며 이름을 알렸다. 현재 국내에서 소요되는 진단키트 물량의 70%가량은 씨젠이 만든다.
그는 “지난해 말 중국에 코로나19가 확산할 때 머잖아 한국으로도 바이러스가 퍼질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올해 1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 검사시약 정보를 공개했고, 일주일 뒤 바로 개발에 착수해 2주 만에 개발을 완료한 후 긴급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빠른 개발과 대응이 가능했던 것은 지난 20년간 각종 유전자 진단시약을 개발해온 데이터와 노하우, AI 알고리즘 덕분”이라며 “기존 방법으로 수개월 걸렸을 진단시약 설계를 몇 시간 만에 해결했다”고 덧붙였다.
씨젠의 코로나19 관련 제품은 A, B, C, D, F형 등 총 5가지로 구성된다. A형과 B형은 코로나19 발생 초기 만든 제품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유전자 3개를 검출할 수 있다. 이후 코로나바이러스의 빠른 돌연변이 발생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추가로 하나의 바이러스를 더 검출할 수 있도록 해 만든 게 C형이다.
이 부사장은 “현재 C형으로 전반적인 검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겨울철 트윈데믹(동시유행)을 앞두고 코로나19뿐 아니라 독감과 감기 증상을 정확하게 구분할 필요성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졌다”며 “이에 씨젠은 동시진단이 가능한 D타입을 개발해 유럽승인(CE)을 받았고, 현재 수출 중이다”라고 했다.
전 세계에 구축된 네트워크와 검사 인프라도 코로나19의 선제 대응에 한몫했다. 이 부사장은 “대용량 자동화 검사 시스템은 한 개의 튜브로 다수의 질병 타깃 유전자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고, 동시에 최소 하루 만에 대량 검사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며 “확진자가 급증할 때엔 빠른 대량 검사가 중요한데 (씨젠은) 이미 이를 전 세계 곳곳에 구축해 우리 제품을 통해 진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씨젠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퀀텀점프’에 성공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3566억원, 영업이익은 2087억원, 순이익은 1653억원을 달성했다. 이미 전년 연간 대비 3배 증가한 수준이다. 지난해 연말 기준 약 8000억원이던 시가총액은 현재 약 7조원으로 코스닥시장 2위다.
다만 급성장하는 씨젠을 향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코로나19 진단키트로 인한 매출 상승은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일회성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관련 진단키트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사 정확도 등 기술 경쟁력을 입증하고 차별화된 다중진단 기술을 부각시킬 수 있다면 새로운 수요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씨젠은 이를 고려해 다중진단 키트로 세계시장을 공략할 방침이다. 이 부사장은 “향후 1~2년간은 코로나19 동시검사 제품에 주력할 예정”이라며 “현재 출시 중인 진단키트에 다양한 용도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스펙을 더한 코로나 진단 제품을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호흡기 질환뿐 아니라 새로운 성감염증 제품 시약을 개발하고, 다양한 시스템을 적용해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이겠다”고 덧붙였다.
이 부사장의 목표는 생활 속 진단키트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 등 신종 감염병 속에서 살아간다면 ‘집’에서 검사하고 결과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며 “집에서 진단키트로 환자 스스로 검체를 채취해 검진센터에 보낸 뒤 검사결과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은 아직 국내에서 이뤄지기 힘드나 미국에서는 가능해 (이러한) 신속 진단키트를 개발 중”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씨젠은 연구인력 확보에 드라이브를 건다. 지난해 말 기준 113명이었던 연구원을 올해 말까지 300명으로 확대한다.
이 부사장은 “코로나19에 대한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면 진단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올바른 치료를 위해선 정확한 진단이 우선 시행돼야 하기 때문”이라며 “자체 연구력을 바탕으로 해외 기업들과의 격차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WHO와 각국 정부 등과의 협조를 통해 이류에서 일류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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