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신아방강역고-34] 응답하라, 1438-1450 세종대왕 동북아 황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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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21-06-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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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실록』 최다 빈출 지명 ’홀라온‘=하얼빈 북쪽 후란강

  • 세종대왕의 즐거운 비명··· 귀순 조공하려 몰려드는 만주 족장들

  • 응답하라, 1438년~1450년 세종대왕 동북아 황제 시대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 우리가 만약에 성채만 지키고 공격하지 않는다면 더욱 적의 배포만 키우게 되어 뒷날의 화가 무궁할 것이니, 반드시 선제 응징하여 후환을 저지하는 게 상책이다.(1)* 
-세종대왕, 『세종실록』78권
 
∙우리가 적을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힘없는 자가 외치는 평화는 무의미한 평화일 뿐이고 남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평화는 굴종일 뿐이다. -강효백, 『중국의 습격』 머리말
 
 
◆『세종실록』 최다 빈출 지명 ’홀라온‘은 어디일까?

∙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에게 귀순해오는 홀라온의 대책에 대해 전지를 내리다. 1439년 (세종 21년)10월 8일
 
∙ 홀라온 두령 벌송 등 4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1443년(세종25년)11월 12일
 
『세종실록』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지명중 하나는 '홀라온(忽剌温)'이다(총210회).

특히 1437년(세종19년) 이천의 2차 파저강 정벌 대첩 이후 1450년(세종32년)서거할때까지 홀라온은 152회나 기록되어 있다. ’홀라온”은 조선 시대 외교법전이자 외교사례집 『춘관지春官志』와 『『春官通考춘관통고』(2)*에도 명기돼 있다.
 
‘홀라온’은 지금의 어디인가?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의 모든 온·오프라인에 일언 반구도 없다.

‘홀라온(忽剌温)이라, 아무래도 어감이 한반도는 아닐 것 같고 만주지방 같은데,, 만주지방이라면 으레 이땅의 주류사관 - 이병도 조선사편수회의 맥을 잇는 친일사관은 압록강 두만강 이남으로 축소 왜곡하고, 1979년-1985년 박정희 말기와 전두환 시절 일본극우의 세계정복론을 기존의 일선동조론과 얼버무려 국내에 재번역 유포된 「환단고기」류는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중동지역등으로 희화화시키는 게 거의 불문율로 되어 있는데...

아무튼 ‘홀라온’에 대해 강단사학은 물론 민족사관 재야사학마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국내의 모든 온·오프라인에는 찾을 수 없어 중국의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에 ‘忽剌温’을 검색했다. 중국의 '사고전서'와 백과사전 등 각종 문헌에서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병부가 아뢰길 조선 압록강 서쪽의 누루하치와 두만강 북쪽의 홀라온(兵部言 鮮鴨綠江西爲奴兒哈赤 豆滿江北爲忽刺溫) 『사고전서』 『명사(明史)』 조선열전 1608년 (만력36년) 5월
 
다음은 바이두 백과사전에 명기된 ‘홀라온(忽剌温)’ 설명이다.
 
홀라온은 하얼빈 북쪽 후란강(呼兰河)이다. 조선 역사에서 등장하는 "홀라온 귀순자"와 "홀라온 올량합"라는 용어는 4개의 후룬부족(해서여진)하나인 우라부(乌拉)부 여진족으로 의미한다. 헤이룽장에서 수렵생활을 하다가 후에 후즈온강을 따라 이동했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 그 땅은 오늘날 하얼빈의 북쪽, 후란강역의 비옥한 들판, 서쪽의 후란하, 동쪽의 둔하와 소흥안령, 남쪽의 송화강과 접해있다.(3)* 
 
세종대왕의 즐거운 비명··· 귀순 조공하려 몰려드는 만주 족장들

지도의 하늘색 선이 홀라온 즉 지금의 헤이룽장 하얼빈 동북쪽을 흐르는 후란강呼兰河이다. ‘홀라온’은 헤이룽장성 남부와 지린성 북부와 랴오닝성 동북부를 의미했다. [자료=강효백 교수]

세종대왕은 1437년 9월 이천의 제2차 훈강 정벌 승전 후에 조공을 바치고 귀순하려 몰려드는 북만주 홀라온의 각민족 족장 무리들이 너무 많아서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4)* 
 
지면관계상 『세종실록』87권 1438년 (세종 20년) 2월 1일(음력) 하루만 소개한다.

1438년 (세종 20년) 2월 1일 을묘
∙ 홀라온 올적합 가당합 등이 토산물을 바치고 귀순하기를 원하다.

임금이 근정전에 나아가서 조회를 받았다. 홀라온 올적합 가당합은 두령 후시파등 5인을 보내 와서 토산물을 바치고, 여진 두령 어랑합 등 4인이 하직하므로, 아울러 전내에서 불러 보고, 임금이 후시파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이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아니하고 고생스럽게 온 것을, 나는 아름답게 여기노라." 하고(이하생략)

∙ 올려보내기 마땅한 홀라온만 보내도록 함길 도절제사에게 전지하다
도절제사에게 전지하기를, "4진을 새로 설치하자, 홀라온(흑룡강 여진족)이 스스로 와서 조공하니 진실로 기쁘다. 그러나 오는 자가 너무 많으면 그들을 관리하는 비용도 적지 않으니, 경은 이 뜻을 알고 좋은 꾀로 포치하여서 홀라온이 올라올 때에, 그들의 추장과 소속 무리의 작질(爵秩)의 높고 낮음과 부락과 세력의 강함과 약함을 자세히 탐문하여 아울러 시달하고(이하 생략)

 
응답하라, 1438년~1450년 세종대왕 동북아 황제 시대

지금으로부터 582년전 1439년 1월 24일(음력 1월 1일) 세종대왕은 경복궁 근정전에 나가 동북3성(만주)의 족장과 일본 본토의 쇼군과 다이묘들로부터 신년하례를 받는다.

임금이 왕세자와 문무 군신을 거느리고 망궐례를 행하고, 근정전에 나아가 왕세자와 백관의 조하(새해인사)를 받았다. 여러 도에서는 하전을 올리고 방물을 바쳤다.
홀라온(흑룡강) 두령 도리야노노호와 골간 우지합 시구시방합 오도리(길림성) 천호 보고로와 오랑합(요령성) 두령 도시어고로·보로·파을대·마고 등 35인과, 왜인 석견주 주포겸정(큐슈 남부 다이묘)이 보낸 중 도산과 좌지원윤(큐슈 북부 다이묘)이 보낸 여아규, 원지직(무로마치 쇼군 미나모토 모치나오 )이 보낸 소아미다보 등 18인이 반열에 참예하여 공물을 바쳤다.
1439년 (세종 21년) 음력 1월 1일 경진(양력 1월 24일)


근정전에 나가 조회를 받고, 공물을 바친 왜인·야인을 인견하다 대마도 도주 종정성이 보낸 표아삼보라 등 여덟 사람과 큐수 다이묘 좌지원윤이 보낸 시지난도 등 두 사람이 수반하고 토산물을 바치었다. 홀라온 석문위 두령 유룡가가 보낸 두령 의성가와 살라아위 두령 감다가 보낸 두령 망내와 마라위 두령 무찰이 보낸 몽고도탑, 마속위) 두령 호심파가 보낸 두령 모이내, 목흥하 두령 속신합이 보낸 두령 박시, 올리해산위 두령 올승합이 보낸 두령 이사응가등 여섯 사람이 수반하고 하직을 고하니, 임금이 인견하고,
대마도 도주가 보낸 이라사야 등 11인과, 홀라온의 우지개 두령 어거리 등 16인이 반열에 따라 토산물을 바치었다. 홀라온 범자위 도사 왕망내)·아하대 등이 하직하니, 임금이 인견하고 말하기를, "날씨가 찬데 먼 길에 가느라고 고생하겠다." 하니, 왕망내가 대답하기를, "지나는 주현에서 먹을 것...
1439년(세종 21년) 12월 6일 경진

 
세종시대, 만주 서남부는 직접지배, 만주 동북부는 간접통치

세종 시대 조선은 건주여진(요령성 남부)을 직접통치하고 해서여진(길림성과 랴오닝성 북부와 흑룡강 남부)을 간접통치하였다. 세종대왕은 동북아의 황제였다.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고려의 사방 경계는, 서북은 당 이래로 압록을 한계로 삼았고, 동북은 선춘령을 경계로 삼았다. 서북은 그 이르는 곳이 고구려에 미치지 못했으나, 동북은 그것을 넘어섰다. 『고려사』 지(志) 39권 지리1(地理一) (5)*

세종대왕은 우선 고려의 서북경계 압록강을 건너 약 60㎞ 북진 훈(渾)강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이를 직할 관리하는 4군을 설치했다. 그런 후 세종대왕은 두만강을 넘어 약 300㎞ 고려의 옛 땅 공험진(흑룡강 북학진)까지 진출, 해서여진(홀라온) 제 족장들이 조공을 바치고 귀순하게 하는 기미정책을 집행하는 전진기지 6진을 설치했다.

재위 32년간 세종대왕은 흑룡강,길림성, 요령성 집거 모든 민족의 족장과 일본본토의 쇼군, 큐슈의 다이묘, 대마도,일기도 도주의 귀순 투항 조공과 하례를 받았다(「세종실록」 총171회)받았다. 특히 세종 20년-32년(1438년-1450년)시대 조선은 세계 최고 선진강국이었고 세종대왕은 동북아 황제였다.
 

◆◇◆◇◆◇◆◇각주

(1)*我若欲但守城砦, 勿與之校, 則益長盜賊之心, 後日之禍無窮矣。 必須懲艾, 沮其後日之心, 策之上也。『세종실록』 78권 1437년 8월 6일 기사

(2)*조선시대 춘관은 예조의 외교관, 추관은 형조의 법관을 의미했음,
『春官志』 3권 야인 정토 世宗十五年, 建州衛指揮李滿住, 詐稱火剌溫野人。
『春官通考』 47권 指揮僉事孟捏可來, 勅諭, 忽刺溫野人,

(3)*朝鲜史所称“忽剌温归顺者”、“忽剌温兀狄哈”等,系指扈伦四部之一乌拉部女真。初猎于黑龙江,后徙忽剌温江沿岸,故名。其地大体在今哈尔滨以北,呼兰河流域之沃野,西至呼兰河,东接屯河及小兴安岭,南界松花江.

(4)* 1438년 1년간 홀라온(해서여진)이 조선에 귀순하거나 조공을 바친 「세종실록』 기록 총 21회
1.홀라온 어랑합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1438-01-11 (세종 20년)
2.홀라온 보당합 등이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1438-01-26 (세종 20년)
3.홀라온 올적합 가당합 등이 토산물을 바치고 귀순하기를 원하다 1438-02-01(세종 20년)
4.올려보내기 마땅한 홀라온만 보내도록 함길 도절제사에게 전지하다1438-02-01 (세종 20년)
5.홀라온 올적합이 올라오면 성명과 직품을 적어 참고하게 하다1438-02-06 (세종 20년)
6.홀라온의 두령 월화 등에게 물품을 하사하다 1438-02-13 (세종 20년)
7.홀라온 안충합 등이 하직하니 안장 말과 의복을 하사하다1438-03-01(세종 20년)
8.홀라온 오을가무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1438-03-16 (세종 20년)
9.홀라온 우적합 등이 하직하므로 물품을 하사하다 1438-03-21 (세종 20년)
10.함길도 도절제사에게 이만주를 귀순 복종시킬 방법을 전지하다 1438-05-24 (세종 20년)
11.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가 상경하는 홀라온 사롱합을 후대하기를 아뢰다1438-06-22 (세종 20년)
12.홀라온 야오시·다모적 등이 조회하고 토산물을 바치다 1438-06-28 (세종 20년)
13.임금이 의정부에 야인 모다적을 이용하여 홀라온 정탐할 계책을 의논하다 1438-07-01 (세종 20년)
14.홀라온 야인 쌍관노·부양고 등을 인견하고 하교하다 1438-07-06 (세종 20년)
15.의정부와 육조가 홀라온 야인 동창의 구혼에 대해 의논하다1438-07-07 (세종 20년)
16.홀라온 야인 모다치에게 하사품을 주고 홀라온의 동정을 묻다1438-07-20 (세종 20년)
17.근정전에서 홀라온 조회 받고 야시 등 7인을 인견하다 1438-09-21 (세종 20년)
18.근정전에서 홀라온의 조회를 받고, 감수 등 9인이 토산물을 바치니 음식을 먹이다1438-11-21 (세종 20년)
19.소랑거 등 홀라온 22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1438-11-26 (세종 20년)
20.근정전에서 조회를 받고 홀라온 5인이 토산물을 바치니 하사품을 차등있게 하사하다1438-12-11 (세종 20년)
21. 근정전에서 조회를 받고 야인 홀라온 두령등 13인이 하직하니 인견하고 하사품을 하사하다 1438-12-21(세종 20년)

(5)*西北, 自唐以來, 以鴨綠爲限, 而東北則以先春嶺爲界. 盖西北所至不及高句麗, 而東北過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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