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환율대란과 환율 안정 조건
달러 당 원화 환율(이하 환율)이 1450원을 넘보면서 온 나라를 초조하게 했던 2022년 10월 외환시장 불안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환율이 1500원을 넘지는 않을지, 또 1997년처럼 IMF외환위기가 다시 오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이 전전긍긍하고 공포 분위기에 사로잡혔던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11월 들어서 환율이 빠르게 하락하여 1250원 대로 안정되면서 환율 공포는 상당 부분 가라앉았지만 환율은 안정된 것인지, 앞으로 환율이 다시 급변동하는 일은 없을 것인지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이 앞으로 금리를 더 올려도 우리는 덜 올릴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환율 안정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이 의문에 답하기 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2022년 8월 중순 이후 11월 초까지의 환율급등(이하 환율대란)이 있기 이전에 세 번의 급격한 환율 상승이 있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가 2월 24일 1192원에서 3월 17일 1241원까지 약 50원 상승했고 두 번째는 4월 초 1200원에서 5월 16일 1286원으로 86원 뛰었으며 세 번째는 6월 초 1212원에서 7월 19일 1318원까지 100원 이상 폭등했다. 결국 2022년 8월 중순 이후의 환율대란이 있기도 이전에 이미 환율은 1192원 대에서 1318원대 이상으로 11% 이상 폭등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환율대란 이전에 환율은 급등할 조짐을 보였다는 점이다.
2022년 환율대란 이전에 환율이 상승기조에 놓여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자본유출이다. 자본유출은 두 계정에서 나갔다. 하나는 직접투자계정이고 다른 하나는 증권투자 계정이다. 직접투자계정에서 작년 1, 2분기 동안 296억 달러가 빠져 나갔고 증권계정에서는 같은 기간 250억 달러가 나갔다. 이 두 계정에서만 546억 달러가 새 나갔다. 같은 기간 경상수지 흑자규모 247억 달러보다 약 300억 달러 더 많다. 그만큼 달러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컸다는 뜻이고 그것이 환율 상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부족한 300억 달러는 어떻게 조달되었을까. 약 182억 달러는 차입 등으로 유입되었고 그것만으로 부족해서 중앙은행 외환보유액이 161억 달러 축소되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환율대란이 있기 전 2022년 상반기 동안 원화환율은 1192원에서 1318원으로 11% 상승했는데 그 핵심 원인은 직접투자와 증권투자 계정에서의 급격한 자본유출이었다. 그나마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을 161억 달러 정도 동원하고 또 해외차입 등으로 도합 290억 달러 끌어오면서 환율 급등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면 3분기부터 환율대란이 발생하면서 1318원에서 1400원대 이상으로 급등한 원인은 무엇인가. 2022년 8월 경상수지가 80억 달러 적자로 반전되었다. 2012년 1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 적자로 돌아섰다. 9월과 10월 다시 흑자로 돌아섰지만 10여 년 동안 지속되던 흑자기조가 깨졌다는 불안 심리는 원화 외환 시장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은 심리적인 것일 뿐 실제 외환시장에서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2022년 9월 내국인의 해외직접투자는 43억 달러로 여전히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환율상승의 원인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또한 1, 2분기에 비하면 큰 규모는 아니다. 9월 이후 환율대란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기타투자계정에서 일어났다. 2022년 9월에만 기타투자계정에서 155억 달러가 빠져 나갔다. 그중 내국인의 단기 해외대출이 93억 달러, 그리고 현금예금 해외예치가 73억 달러였다. 10월에도 19억 달러가 이 계정에서 새나갔다. 그 이전 7월과 8월에는 각각 28억 달러와 45억 달러 유입되던 것이 9월부터는 유출로 급반전 된 것이다. 이에 더하여 외국인의 국내대출 회수도 빠르게 일어났다. 8월 32억 달러, 9월 21억 달러 그리고 10월 34억 달러가 외국인 계정에서 빠져나가 석 달 동안 외국인의 기타부문 유출액 합계는 87억 달러나 된다. 이것이 9월 환율 폭등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증권투자계정에서는 51억 달러가 순유입이 되면서 오히려 환율안정에 기여하였다. 정리하면 2022년 9월부터 11월까지 환율대란에 가장 크게 기여한 원인은 증권투자계정의 유출이나 경상수지 흑자 축소 때문이 아니라 기타투자계정에서의 급격한 유출, 즉 내국인 대외대출과 현금예금이 급격히 늘어남과 동시에 외국인의 국내대출 회수였던 것이다.
그러면 왜 2022년 8월부터 10월에 이르기까지 대출과 해외예치로 구성된 기타투자계정에서 급격한 자본유출이 일어났을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한·미간의 금리역전이다. 7월 잠깐 금리역전이 일어났다가 다시 2.5%로 같아진 다음 9월 21일 연준이 3.25%로 올리면서 한·미간의 금리차가 0.75%까지로 확대되었다. 그에 더하여 8월 경 한국은행은 미국 연준만큼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신호를 시장에 내보내면서 한·미간의 금리역전이 상당히 지속될 것이라는 시그널을 내보냈다. 이런 한은의 신호가 8월 이후 기타투자계정에서 내국인의 단기 해외 대출 및 예금유출을 촉발하고 외국인의 대출회수를 자극한 것이다. 환율대란의 결정적인 단초를 한국은행이 제공했다고 판단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11월 이후 환율이 크게 안정된 이유는 무엇인가. 증권투자계정에서의 유입이다. 상반기 250억 달러 이상 유출되던 것이 10월에만 51억 달러나 유입으로 반전되었다. 그중 16억 달러는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 회수였고 35억 달러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및 채권투자로 유입되었다. 정책당국의 외국인 국내채권투자에 대한 감세 조치 등의 인센티브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 위에 직접투자 유출도 상당폭 감소되었고 기타투자계정의 유출압력도 크게 완화되었다. 11월 이후 투자거래 통계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증권투자계정의 유입은 지속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계묘년의 환율 안정은 세 가지에 달려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기준금리다. 현재의 1.25% 포인트 금리역전은 장기간 유지되기 힘들다. 미국이 금년 중 5.0%로 올릴 것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기준금리를 충분히 올리지 않으면 환율대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둘째로 내국인의 대외 투자다. 증권이나 채권이나 대출로 국내 자본이 해외로 유출된다면 환율이 크게 불안해질 수 있다. 정부가 내국인의 대외투자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투기성으로 의심되는 경우 신속하고 건전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셋째로 외국인의 국내투자다. 국내 주식이나 채권투자가 안정적으로 늘어난다면 환율은 크게 안정될 것이다. 외국인의 국내투자에 대한 적절한 인센티브 제공은 환율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적절한 금리차 유지, 내국인의 대외투자 관리감독 강화, 그리고 외국인 국내투자에 대한 적절한 인센티브가 제공된다면 환율대란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UCLA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제1부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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