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재'는 전례 없는 캐릭터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주인공 '황시목'의 주변인물이었던 인물이지만, 시청자들의 열렬한 응원으로 한국 드라마 최초 스피오프작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게 됐다.
얼마나 멋진 캐릭터기에 '조연'에서 '주연'이 되었을까 싶겠지만, 사실 '서동재'는 한국드라마 역사상 가장 볼품없는 캐릭터다. 윗사람에게는 아첨을, 아래사람에게는 폭언을 일삼았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온갖 지저분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하여 '서동재'는 살아남았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배우 이준혁(40)은 '서동재'를 주인공으로 승격시킨 장본인이다. 지난 2017년 '비밀의 숲'을 시작으로 2020년 '비밀의 숲2', 2024년 '좋거나 나쁜 동재'까지 7년여간 '서동재'의 삶을 함께해왔다. '서동재'라는 인물을 가장 탐탁지 않아 하지만 누구보다 그를 잘 알고, 가장 '서동재'답게 표현하는 배우다.
"솔직히 걱정이 많았어요. '동재'로 뭘 할 수 있겠어요. 시즌1의 악역이었으니 이제와 정의로워질수도 없고요.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시청자분들께서 '좋거나 나쁜 동재'를 보며 '비밀의 숲' 시즌1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하시는 걸 보며 '아, 내가 비밀의 숲을 망치지는 않았구나' 싶더라고요. 안심했죠."
이준혁의 말대로 '동재'는 시즌1의 악역이었다. 그는 생존에 대한 강한 의지로 '악역'이라는 굴레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살길'을 찾았다. 이준혁은 '비호감' 캐릭터가 '호감'으로 거듭나게 된 이유로 "놀리기 좋은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밀의 숲' 시즌1의 동재는 비호감이길 바랐어요. 그래서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을 캐릭터의 모델로 삼은 거고요. 시즌2부터 호감을 쌓아나간 건데. 제 생각에는 '동재' 자체가 놀려 먹기 좋은 타입이기 때문에 (호감의) 반응이 쌓인 것 같아요. 누구나 자유롭게 '지질하다'고도 하고, 놀리기 좋은 상태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우리 동재'보다, '느그 동재'라고 불리는 게 좋아요. 웃기잖아요."
'비밀의 숲' 시리즈를 거듭하며 '동재'는 다양한 '밈'을 양산했다. 캐릭터 인기를 방증한 셈이다. 대중이 바라고, 즐기는 모습이 '밈'을 통해 구현된 만큼, 이준혁이 연기한 코미디 연기에도 이런 대중의 취향이 녹아있는지 궁금했다.
"밈을 (캐릭터에) 반영한 건 없는데, '비밀의 숲'에서 쓰인 애드리브가 반응이 좋아서 (디테일의 요소로) 한 번 더 쓰인 적은 있죠. '동재'가 소보로 빵을 좋아한다는 설정이었는데요. (조)승우 형과 애드리브를 통해 만들어졌어요. 반응이 좋아서 이어가게 됐죠. '밈'은 결국 우리가 재생산할 수 없고 오히려 피해 가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팬들이 즐길만한 거리가 있다는 건 좋은 일 같아요."
시청자들은 '동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외모'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외모 덕을 보았다고 하기에 '동재'는 잘생긴 얼굴을 너무 마구잡이로 쓰는 게 아닌가 싶다.
"(외모에 대한 욕심을) 마음껏 던졌죠. 그런 건 어렵지 않아요. 이미 수많은 작품 속 명배우들이 외모에 대한 욕심을 내려두고 재밌는 연기를 자주 보여줬잖아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만 봐도 지질한 연기를 많이 했고요. '동재'도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죠. 좋은 배우는 내면까지 보여주었을 때 더욱 매력적이기도 하니까요. (외모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요."
그가 신경 썼던 건 '동재'의 연기 톤이었다. '비밀의 숲'이 묵직한 분위기를 가졌다면, '좋거나 나쁜 동재'는 유쾌하고 경쾌한 리듬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1회에서 묘한 코미디 톤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게 잘못하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가자, 대검!' 하면서 점프하는 모습도요. 하하. 감독님께서 코미디를 잘하시고 리듬감을 잘 만드는 것 같아요. 음악 선정도 잘 맞았고요."
반면 '동재'의 외모가 빛나는 순간들은 스태프의 덕이 컸다며 공을 돌렸다. 법정 장면이나 취조 신은 코미디보다 묵직한 톤을 이어가며 그의 비주얼이 더욱 뜻깊게 쓰였다는 부연이었다.
"마지막 회에서 '동재'가 증인으로 서는 장면은 그런 느낌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서 웃길 수 없으니까. 하하. 어떤 의도가 다 맞아떨어지고 팀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해나가는 작업이 영화, 드라마의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그 장면에서 '동재'가 멋졌다면 특히 하철(카메라 감독)이가 잘한 게 아닐까 싶어요.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분명 좋아했을 거예요. 꼭 하철이 덕이라고 써주세요."
극 중 굵직한 사건을 해결하며 청주지검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동재'는 "이런 마음이었구나. 좋은 자리에 중심이 된다는 것. 주인공이 된다는 건···." 이라며 흡족함을 감추지 못했다. 해당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동재'를 대표하는 명대사로 꼽히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준혁에게 물었다. "주인공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이냐"고.
"그동안 제가 주인공을 안 해 본 건 아니라서. 십수 년 만에 '주인공이 된 소감'을 말하는 게 웃기긴 한데요. 하하. (주인공 자리는) 부담이 되죠. 마냥 신나지만은 않아요. 업무량도 많아지고요."
이준혁은 '좋거나 나쁜 동재'의 중심으로 회의, 작업을 함께 해나가며 제작진의 마음에서 출연진을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주인공 때문은 아니고 회의, 작업을 함께 참여하게 되면서 느낀 거예요. 배우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연기를 잘 해내면 정말 고맙고 예쁘더라고요. '세상에, 이렇게 준비를 잘 해줬구나' 싶고요."
그는 모든 배우가 만족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특히 현봉식이 "예뻤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봉식이가 아주 긴 대사가 있었는데 그걸 완벽하게 해내더라고요. 촬영 2주 전부터 부담을 줬었거든요. 잘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대사 한 번 안 틀리고 완벽하게 해내서 촬영을 1시간 만에 끝냈어요. 스태프들이 박수를 쳐줬어요. '배우가 참 소중하구나' '동료들이 고맙구나' 그런 걸 느꼈죠."
인터뷰를 하면서 흥미로웠던 건 이준혁이 '동재'를 대하는 태도였다. 인기 캐릭터기 때문에 애착이 깊을 거라 짐작했지만, 이준혁은 누구보다 냉철하게 '동재'를 보았다. 그런 이유로 팬들은 "'서동재'에게 가장 악플을 잘 달 수 있는 건 이준혁일 것"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아까 이야기했지만 '동재'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모델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나 봐요. 하하. '혐관(혐오 관계)'이라고 불러주시는데, 사실 '동재'는 저를 혐오할 수 없죠. 말하고 보니 재밌네요. 저는 '동재'를 싫어할 수 있지만, '동재'는 저를 혐오할 수 없다는 게요."
시청자들은 이미 이준혁과 '동재'의 관계를 '밈'처럼 부르며 즐기고 있었다. "맡은 역할 중 가장 싫어하지만, 이준혁의 '퍼스널 컬러' 같은 캐릭터라고 부르더라"고 말하자, 그는 "동재가 퍼스널컬러이길 원하지 않는다"고 다급히 답했다.
"절대. 절대로요! 저는 새로운 컬러를 찾고 싶어요. 하하. 제가 워낙 '동재'를 놀리는 걸 좋아해서 웃기게 잘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시즌2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동재'의 스핀오프가 나왔던 것처럼, 시즌2 역시 시청자들의 열렬한 반응에 따라 제작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많은 팬이 반응을 보여준다면 티빙이 제작하지 않을까요? 하하. 만약 시즌2를 만든다고 해도 지금까지 해왔던 걸 답습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목이 바뀔 수도, 장르가 바뀔 수도 있겠죠. 진한 멜로일 수도 있고, 호러일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저도 도전해 볼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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