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중앙에서 동서로 나누는 드니프로강 인근의 에너지 발전 인프라 시설을 중거리 탄도 미사일로 공격하여 전황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평소 가능한 한 전쟁을 조속히 끝내게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 교전 양측이 종전 임박을 예견한 가운데 러시아 측에서 이런 확전 강세를 두는 것은 아마도 종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쟁 발발 직전 필자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면서 느낀 첫 인상은 모스크바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다. 과거 오랜 역사의 공산권 러시아 지배로 인해 그런 듯했다. 잘살지 못하는 나라지만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어 IT로 국가 경제를 키워 보기 위해 우크라이나는 노력을 해왔다.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에서 개최된 IT 학술대회 기조 강연자로 초청을 받아 우크라이나 땅에 발을 디뎠다. 러시아의 침공이 있기 불과 1년 전 일이다. 이때만 해도 아주 평화롭던 이 나라가 세계를 경악케 하는 화염 속에 휩싸일 줄은 그 당시는 아무도 몰랐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는 러시아에 이어 둘째로 국토 면적이 큰 대국이나 1인당 국민소득은 불과 4000달러 수준으로 유럽에서 가장 꼴찌 최빈국이다. 마치 30여 년 전 한국으로 생각하면 된다. 동남아시아로 치면 인도네시아 정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주 산업은 농업이다. 좋은 땅과 기후 덕분에 미국, 태국과 더불어 세계 최대 곡창 지대 중 하나다. 그러나 큰 덩치에 비해 지난 1000년 동안 남의 지배만 받아온 약소국 신세를 지금까지 면치 못하고 있는 나라다. 1000년 전부터 몽골 지배를 받다가 16세기에 이르러서는 폴란드와 러시아의 연합 세력에 국가가 드니프로강을 중심으로 동과 서가 각기 분할돼 지배당했고 17세기에는 폴란드 통치 진영까지 러시아에 의해 지배당하면서 러시아 지배권에 들어가게 됐다.
그 당시부터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이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나라라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니아를 침공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우리는 하나라는 말을 뇌인 것으로 보면 그 발언의 역사적 배경이 17세기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한일합병 때처럼 우크라이나 언어 말살 정책으로 자국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인구가 늘어났고 1922년에는 국가 전체가 스탈린 휘하의 소련 완전 지배 체제로 돌입했다. 그러다 1991년 소련 붕괴와 더불어 드디어 독립 국가로 재탄생했고 인구 구성 비율에서 러시아 출신이 20%에 달할 정도로 국가 정체성이 희석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재합병을 틈틈이 노리던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함으로써 그 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간단히 편입하면서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러시아가 이번과 같은 대대적 침공을 전격 감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고는 장장 2년 6개월 동안 적국에 침략당하고 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난국을 스스로 자초한 것 아닌가 하는 견해가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상 처음으로 유럽연합의 일원이 됨과 동시에 나토의 일원이 될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는 건 어떻게 보면 불행 중 다행이다. 이번에도 실기할 것인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국제사회를 향해 과거의 우유부단한 정치력을 이제는 더 이상 보여줘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사실 이런 유형의 지리멸렬한 전쟁 양상은 과거에 본 적이 없다. 전쟁 발발 시작부터 매우 이상하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다른 나라에서 전부 빌려 다 쓰고 있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강대국들의 전략에 당한 신세다. 원래 우크라이나는 1994년 초까지는 미국, 러시아 다음으로 핵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있던 군사 강대국이었다. 핵탄두 약 1700발과 ICBM 170기 이상을 보유한 세계 3위 핵보유국이었다. 그런데 1994년 말 부다페스트에서 미국, 영국, 러시아 3국 주도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 회의에서 우크라이나는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하면서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게 된다. 이때 우크라이나가 보유하고 있던 핵탄두와 미사일을 반환하면서 공교롭게도 그것들이 전부에 러시아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러시아에 넘기기 전에도 우크라이나는 핵무기 작전통제권을 자체적으로 갖고 있지 못했다. 핵무기가 물리적으로 우크라이나 영내에 있었지만 작전통제권은 러시아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고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며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의 현 국경에 대한 주권을 확인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에 유엔 안보리가 대처한다는 국제 조약이 1994년 12월 5일 부다페스트에서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러시아, 미국, 영국이 서명함으로써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핵탄두와 ICBM을 전량 러시아로 반출해 폐기했다. 핵무기 전량을 러시아에 넘겨 비핵화를 완료한 것은 1996년 6월이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자국 원전에서 쓰는 우라늄 원료를 모두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사용 후 핵연료도 러시아로 반출해 처리하고 있다. 1994년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크림반도를 포함한 영토보전과 주권보장 경제적지원 등을 국제적으로 약속받았다. 이른바 부다페스트 조약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조약에 서명한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들은 아무런 연합군 파병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법적 구속력이 별로 없고 부다페스트조약에서 조차도 핵무기에 의한 공격이나 위협이 있을 때만 지원을 위해 안전보장위원회를 소집한다고 하였기에 서방세계가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아도 조약위반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핵무장 포기는 우리의 역사적 실수였다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은 군사주권을 갖고 있지 못했던 우크라이나가 2014년에 이르러 크림반도를 러시아 측에 합병당하고 나서 나온 말이다. 2018년의 일이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이 내놓은 성명은 이렇다. 우리에게 주어졌던 안전 보장 약속은 해당 각서의 종이 값만도 못할 정도로 믿어서는 안 되며 각국은 자신의 힘에만 의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깨달음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 서방 미사일을 지원해주면 그걸 사용하여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영국에 하는 바람에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무슨 역사의 장난이며 과연 누가 누구와 전쟁을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일국의 군사주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는 좋은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현재도 유럽 최대 우라늄 매장량을 자랑하며 또한 원자로를 17개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원자로에 대한 통제권이 러시아 측에 있다는 게 어떻게 말이 되는가. 우크라이나 국토 내 원전을 러시아 군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군이 직접 공격하고 있다는 뉴스가 바로 그런 경우를 잘 설명해준다. 이번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는 교훈은 국제조약에 많은 허점이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만 예외가 아니며 어느 다른 국가도 그런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은행은 국가 재건 비용을 약 500조원으로 추산했다. 우리나라 1년치 국가예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근 3년간 지리멸렬하게 끌어온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비롯한 국제 정세 변화로 2025년 새해에는 끝날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가장 큰 핵심 쟁점으로 부각된 가운데 종전 조건 협상 줄다리기에 1년을 보내리라고 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추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면 당장이라도 러시아 병력을 철수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양국 상호 간 에너지 시설 공격 중지에 관한 협상이 성공한다면 종전 분위기는 조성될 수 있을 것 같다. 종전 후 한국이 격동 30년을 통해 세계 10위권 자리를 잡은 한강의 기적을 보여줬듯이 침공당한 우크라이나가 드니프로강의 기적을 과연 세계 만방을 향해 보여줄지 기대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국가 지도층이 그들의 역사에서 부정부패를 과감히 척결하고 공의로운 길을 걸음으로써 국가를 견고하게 만들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결의하고 실천하는 일 것이다. 앞으로도 러시아를 대항할 그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을 것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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