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이후 처음 발동된 계엄령이 디지털 사회를 살고 있는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과도한 억제력을 가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상계엄은 5시간 30분 만에 해제됐지만 짧은 시간에도 인터넷 통신망 등을 통해 전 국민 개인정보를 감청, 검열, 차단 가능하기 때문에 디지털 권리가 훼손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실제 주요 부처는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사실 유포 금지를 이유로 개인의 디지털 정보를 검열·감시하는 조직 구축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계엄의 억제력이 지나치게 커진 만큼 시대를 반영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방송통신위원회 등 주요 부처들은 가짜뉴스 및 여론조작 대응반 구축을 시도했다.
일부 이동통신사들은 계엄사령부의 개입을 고려해 비상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사가 통신 감청, 인터넷 차단 등을 요청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다. 계엄 선포가 국민의 디지털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헌법 제77조와 계엄법 제9조에 근거한다고 정치권 관계자는 설명한다.
비상계엄에 따른 통신·SNS 검열 우려에 따라 해외 IT 서비스로 갈아타는 이른바 '디지털 망명' 현상도 나타났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전날 한국 애플 앱스토어 무료앱 인기차트에서 50위권이던 텔레그램은 이날 3위까지 급등했다. 또 IP주소를 숨길 수 있는 VPN(가상사설망) 앱 설치 횟수도 급증했다. 이날 앱스토어에서 닌자VPN, 유니콘 HTTPS, 노드VPN 등 인기 VPN 다운로드 횟수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엄 선포와 함께 네이버와 다음 카페가 접속 오류를 일으킨 것을 두고도 계엄사의 인터넷 커뮤니티 통제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후 네이버와 다음 측이 트래픽이 몰리면서 서버가 일시적으로 마비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의혹은 해소됐다.
전문가들은 과거 오프라인에서 집회와 시위를 하고, 인물을 특정해 사찰을 하던 아날로그 시대와 비교해 시대가 변한 만큼 계엄에 관한 법도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 교수는 “현행 계엄 관련 헌법이나 법령은 과거 오프라인에서 시위를 하고, 집회를 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만큼 디지털화된 대한민국 시대상을 반영하지 않는다”며 “작금의 계엄령 선포는 훨씬 큰 통제력이 필요하고, 그 범위도 광범위하다”면서 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어 “계엄의 목적에 따라 전시나 사변과 관련된 범위 내에서 제한돼야 하는데 인터넷 등 기본적으로 소통하는 모든 것에도 억제력이 닿을 수 있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며 “억제력이 과하게 작용하면서 과도한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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