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가 순자산(AUM) 규모 50억원 미만의 ETF 상장 폐지 속도에 불을 붙이고 있다. 운용업계는 ETF 개수가 많은 만큼 폐지수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상장된 ETF 수는 935개, 이중 51개가 상장폐지됐다. ETF 상장 폐지 건수는 2022년 6개, 2023년 14개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운용사 별로 보면 KB자산운용 16종목, 한국투자신탁운용 11종목, 한화자산운용 8종목 순으로 높았다.
메타버스, 방송·미디어 등 이전에 반짝 테마성으로 인기를 끌던 종목이 상장폐지 명단에 올랐다. 반도체, 미국 빅테크, 이차전지 등 ETF로 투자자들이 옮겨간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 변동성에 베팅해 지수 이상의 초과 수익을 추구하는 베타 전략인 하이볼ETF도 레버리지 ETF가 인기를 끌면서 상폐 수순을 밟았다.
반면 국내 ETF 톱 2로 불리는 삼성자산운용은 1종목, 미래에셋자산운용은 3종목만 폐지됐다. 모두 은행채와 금융채 ETF였다.
한국거래소는 반기마다 순자산이 50억원 미만인 ETF(상장 후 1년 이상)를 선별해 관리종목으로 지정한다. 이후 다음 반기 말까지도 순자산 규모를 50억원 이상으로 회복하지 못하면 거래소는 해당 ETF를 상장폐지한다.
해당 ETF는 대부분 AUM 50억원 미만이면서 평균 거래량(60일)이 1000주를 넘기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 ETF’다. 유동성이 낮은 만큼 상장폐지 위험도 큰 종목들을 말한다. 로우볼과 하이볼 ETF의 경우 상폐직전 평균 거래량은 300건 내외였고 하루 거래량이 10주도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해 연말 기준 ETF 시장 규모는 173조6000억원으로 매월 5%대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운용사간의 치열한 시장 경쟁으로 매월 평균 8개 수준의 ETF가 상장되고 있다. 매년 상장 건수는 최근 3년 추이로 보면 2022년 139종목, 2023년 160종목, 지난해 175종목으로 이 역시 증가 중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풍요속의 빈곤이다"면서 "국내 운용사 간 과도한 점유율 경쟁, 테마성에 치중된 상품 출시가 많아져 '좀비 ETF'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운용사 간의 베끼기식의 상품 출시, 보수 인하 경쟁으로 운용사의 소득은 별로 없다"며 "특히 대형사와 달리 시장 선점을 하지 못한 중소형사는 더욱 불리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해 ETF 관리종목을 신청한 운용사는 NH-아문디와 흥국 등 모두 중소형 운용사로 이들 ETF는 올해 상장폐지를 앞두고 있다.
대형 운용사 위주로 ETF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금융당국은 ETF 관리에 나서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운용사에 좀비 ETF 상장 폐지를 하거나 유사한 종목은 합병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거래량이 적은 ETF는 투자를 했다가 투자자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국 기조에 따라 KB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은 거래가 부진한 소규모 ETF 상장폐지에 선제적으로 나섰다. 한화자산운용은 ETF와 연금 부문을 통합하고 “ETF를 살포하듯 출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신 한화 주력인 방산 관련 ETF 출시에 몰두하고 있다.
KB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을 비롯한 다른 운용사도 투자자들에게 ETF 상폐 종료일을 알리며, 거래가 활발한 유사 ETF로 투자 이동을 안내하거나, 거래소와 자사홈페이지를 통해 유동성공급자(LP) 호가를 던질 때 매도를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올해에도 KB, 신한, 한화자산운용사는 상장폐지를 통해 ETF 간소화를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몰빵형 ETF' 투자, '테마성 단타 매매' 등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익스포저를 기준으로 특정 종목의 비중이 3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그러나 이미 시장에서 거래되는 ETF는 이를 적용할 수 없어 여전히 단타 매매가 성행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ETF의 본질은 원래 장기 투자하는 것"이다면서 "운용사와의 소통을 통해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ETF 출시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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