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산업변화에 신속히 대응해야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다. 세계 패권국가인 미국의 정권 교체기와 산업변화의 변곡점에서 국내 대기업들은 긴장해야 한다. 대선 후보자의 정책 방향과 산업기술 변화의 흐름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국제정세 변화에 대해 살펴보자. 지난해 11월 미 대선에서 민주당 해리스 후보와 공화당 트럼프 후보 간 경제공약 차이가 확연하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을 계기로 미국의 대외 경제정책이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었으며 국제정세도 본격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 바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그는 파리기후협약 재탈퇴, 전기차 의무화 폐지, 천연가스 수출제한 금지 폐지 등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바이든 정부의 기후변화정책을 지우는 데에 전념하였다. 또한, 미국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캐나다·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하며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대외수입청도 만들 계획이다.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검토하고 있으며 반도체 지원법 장래도 불투명하다. 한마디로 천지개벽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JP모건체이스, 시티그룹 등 미국기업들은 트럼프의 쇄도하는 행정명령을 이해하기 위해 워룸(war room) 등 상황실까지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기업들은 트럼프의 고관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 반도체 지원법 변동 여부 등 다양한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이 중단될 경우, 미국에 공장을 가진 현대차그룹은 물론 K배터리 3사도 영향을 받게 된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인 SK하이닉스·삼성전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인 미국에서 새 정부 탄생으로 경제정책 변화가 예상됨에 따라 LG전자, 삼성전자, 현대차, SK 등은 대관업무를 강화해왔다.
최근 미국의 글로벌공급망 정책, 국제정세 등 외부 환경 변화에 신속히 대비하는 문제가 국내 대기업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의 마켓인텔리전스 부서는 이러한 상황을 사전에 감지하여 CEO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대관업무는 마켓인텔리전스 기능의 주요 부분이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국내기업의 대관업무 부서는 삼성전자의 글로벌퍼블릭어페어스(GPA), SK그룹의 SK아메리카, LG그룹의 글로벌전략개발원, 현대차그룹의 국제정책실(GPO) 등이 있다.
국내기업들은 트럼프 2기 탄생을 대비하여 트럼프 측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인물들을 영입해왔다. 현대차그룹과 삼성전자는 각각 성 김 전 주한 미국 대사,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 대사를 영입했고, LG그룹은 트럼프 1기 백악관에서 부비서실장을 지냈던 조 헤이긴을 워싱턴사무소장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트럼프의 고관세 부과 등에 대비하기 위해 현지화 전략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 제철소를 건립할 예정이며, 앨라배마주· 조지아주 공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LG전자는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가전을 미국 공장으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SPC그룹은 텍사스주에 제빵공장 건립을 계획 중이며 CJ제일제당도 사우스다코다주에서 아시안푸드 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 해군의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K조선업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콕 집어서 언급한 바 있다. 세계 조선업 시장은 중국이 장악하고 있으며 미국의 조선업 경쟁력은 뒤떨어져 있다. 미중패권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어 트럼프 2기 정부는 방산 분야에서 국내 조선업체들과 전략적 제휴를 원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화그룹은 재빠르게 미국의 필리 조선소를 인수하였다.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미래 산업변화 트렌드를 파악하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매년 1월 열리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전시회인 CES 행사를 관찰해보면 산업변화와 기업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CES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이 주목받았으며, 오픈 AI의 챗GPT를 계기로 빅테크의 AI 기술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올해 CES에서 눈에 띈 화두는 AI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CES 2025 기조연설에서 ‘피지컬 AI시대’를 예고했다. 그동안 AI 기술이 데이터와 언어영역에서 개발되었다면 앞으로는 로봇, 자율주행차 등에 접목하여 기하급수적으로 발전될 것이다. 미국의 빅테크는 물론 세계 각국 기업들이 휴머노이드 로봇개발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AI 로봇 시대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비롯해 자율주행차, 플라잉카, 자율주행선박 등이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가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엔비디아, TSMC, SK하이닉스가 전략적 동맹을 맺고 있다. 최근 반도체기업 브로드컴이 구글, 메타, 바이트댄스 등과의 제휴를 통해 엔비디아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피지컬 AI시대’는 새로운 산업으로 진화하는 변곡점이다. 유통업, 호텔업, 석유화학, 건설업 등 전통적 산업을 주력사업으로 보유한 기업들은 미래사회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뒤처지게 된다.
국내기업들도 혁신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SK그룹은 구조조정을 하였으며 기업의 핵심역량을 AI 기술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CES에서 엔비디아 젠슨 황을 만나 미래기술을 협의하였다. LG그룹도 구광모 회장 지휘 아래 일찍부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작업을 추진해왔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전기차, 자율주행차, 로봇 산업에서 혁신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도 로봇 산업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새로운 산업변화에 발맞춰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뒤지고 있는 도요타 자동차는 AI, 로봇, 자율주행기술을 활용한 ‘그린 AI 우븐시티(Woven City)’라는 첨단기술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하이브리드 기술이 뛰어난 혼다와 전기차 기술이 좋은 닛산은 합병하여 시너지를 발휘할 예정이다. PC 시장에서 명성을 날렸던 미국 델 기업이 AI 서버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산업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기회를 놓칠 경우, 글로벌 기업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어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코닥과 폴라로이드가 디지털 사회를 따라가지 못해 퇴출당했으며, 반도체 업체인 인텔도 산업변화를 감지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외 시장에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모바일 사회를 인식하지 못해 플랫폼 기업에 시장을 빼앗겨 사업을 축소하거나 포기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국제정세, 산업·기술 변화를 경쟁자보다 먼저 감지하고 대비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다. 대기업의 마켓인텔리전스 부서가 이 역할을 담당하면서 CEO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지원해야 한다.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과 미래산업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마켓인텔리전스 업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직원들의 마켓인텔리전스 역량 제고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Pace대학 경영학 박사 △국정원 국제분석관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주 보스턴총영사관 영사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