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노조의 불법 점거에 대한 형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했음에도 민사에서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해 '법적 불일치' 논란이 일고 있다. 노조의 공장 불법 점거로 당초 계획했던 월 평균 생산 계획을 달성하지 못했는데도 일률적인 기준만 적용해 기업의 피해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다양한 차종을 미리 생산해놓고 글로벌 니즈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자동차 업계의 관행을 살피지 못한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부산고등법원은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및 지회 노조원 김 모 씨 등에 대해 불법 쟁의행위로 비롯된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현대차 측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2012년 8월 김 씨 등이 사내하청 비정규직 근로자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울산공장 의장라인 등을 불법으로 멈춰 세웠으나, 해당 기간 초래된 매출 감소 및 고정비용 손실 등 회사 측 손해에 대해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김 씨 등 복수의 노조원들은 이미 수년 전 해당 불법 점거를 포함 수차례 공장 불법 점거 행위로 형사재판에서 벌금형의 유죄가 확정됐다. 김 씨 등은 지난 2014년 10월 울산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듬해 7월 부산고법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노조원들의 공장 불법 점거로 인해 현대차는 자동차 생산 라인 가동이 멈췄을뿐 아니라 피해 복구 비용 및 인건비, 보험료 등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이에 따라 민사 재판인 울산지법 1심과 부산고법 2심은 현대차의 손실 발생을 인정해 노조 및 김 씨 측에 총 3억 18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대법원은 2023년 6월 불법 쟁의행위 종료 후 상당 기간 내 추가 생산을 통해 생산 부족분이 만회되었는지 여부를 면밀히 따져보라며 원심판결 일부를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부산고법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공장 불법점거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추가 생산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회복됐다'는 노조 측의 일방적 주장을 수용했다. 형사적으로 이미 유죄가 선고된 사안에 대해 피해 배상 책임은 없다며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판결로 법원이 형사 및 민사상 판단이 서로 상충되는 법적불일치 상황을 초래했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또 재판부가 민법의 기본 원칙인 '입증책임의 원칙'을 도외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의 주장을 수용하는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파업 후 추가 생산으로 부족분이 만회되었는지 여부를 노조 측이 증명해야 한다. 노조 측의 불법 쟁의행위로 생산하지 못한 부족 생산량을 만회하기 위한 추가 생산이 없었음을 입증한 현대차 측과 달리 노조는 재판 내내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법원이 증거 및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채증법칙'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불법 쟁의행위가 일어났던 2012년 8월 당초 계획 생산량보다 1만2700대가 적게 생산됐음에도, 재판부는 연간 계획 생산량 기준 3300대가 더 생산됐다며 불법 쟁의행위 후 추가 생산이 이뤄져 손해가 만회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회사 측은 매년 초 세우는 '계획 생산량'은 미확정 단순 목표치이며, 매월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실제 운영계획 상으로 2012년 연간 목표 대비 1만6150대가 적게 생산됐다는 점을 입증했다. 심지어 피고 측 증인도 실제 운영계획은 계획생산량 대비 수정된다는 취지로 증언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재판부는 현대차의 생산방식은 '주문생산방식'으로 일시적 생산 지연에도 고객이 곧바로 매매계약을 취소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고, 따라서 매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봤다.
이는 고객 주문이 없더라도 일정 물량 이상의 재고를 확보해두는 자동차 업계의 일반적 관행을 무시한 것이다. 현대차는 재판 과정에서 고객 주문 물량 외에도 다양한 옵션의 차종을 미리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파기환송심 판결은 공장 불법 점거와 같은 불법 쟁의행위로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노조원들에 대해 민사적 배상 책임을 면제해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이 같은 판결은 사용자의 재산권을 심각히 침해할 뿐 아니라 향후 다양한 불법 쟁의행위를 조장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