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못 꿴 첫 단추
대한민국의 미술박물관 제도가 해방된 지 80년이 되도록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의 시초는 일제 강점기인 1939년 경복궁 후정에 조선총독부에서 주로 ‘조선미술전람회’ 전시장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문을 연 ‘조선총독부미술관’에서 비롯되었다.당시 우리나라에는 2개의 미술관이 있었는데, 하나는 1909년 대한제국기 황실에서 설립한 제실박물관으로 일제 치하에 창경원박물관, 이왕직박물관으로 운영되다 1938년 덕수궁에 신축건물을 마련한 이왕가미술관에 통합되었다. 이왕가미술관은 오늘날 박물관학(Museology)에 규정된 미술박물관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총독부미술관은 소장품이 없는 전시 위주의 시설로 운영되었다. 미술관이란 명칭을 사용했지만, 미술관이 아닌 전시관(Exhibition Hall)이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광복 후에도 이어져 이왕가미술관은 현 국가유산청의 전신인 이왕직에서 구황실재산사무총국에 이어 문화재관리국 관할 하에 소장품(Collection)이 있는 미술박물관으로 1946년 덕수궁미술관이란 이름을 얻어 운영되었고, 총독부 박물관은 국립박물관이, 총독부미술관은 국립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당시 문교부 산하의 국립미술관은 미술관이란 명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제강점기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등 관전은 물론 일반시민들에게 대관도 하는 전시시설로 운영되었다. 따라서 당시 국립미술관은 작품수집기능이 없었다.
1950년 국립박물관은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신인 ‘민족학박물관’을 흡수 통합하고, 1968년 출범한 문화공보부는 1969년 5월 덕수궁미술관을 국립박물관과 통합했다. 그리고 1969년 10월 문화공보부는 경복궁 구 총독부미술관 건물에 소장품 한 점 없이 전시 기능만 유지한 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개관했다.

덕수궁 시절의 국립현대미술관은 행정공무원이 관장직을 수행하고 학예연구원 즉 큐레이터가 없이 전문가 1~2인을 지금의 기간제와 비슷한 촉탁직으로 두어 미술관의 전문 업무를 맡겼던 시절이라 작품 수집은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6인 자문위’가 수행했고, 미술 전공자도 아닌 인사를 별정직으로 채용해 약 30년간 작품수집담당공무원으로 임명해 수집업무 일체를 담당하도록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제도는 1986년 과천으로 이전해 학예연구원 제도가 도입되고 학예연구실이 설치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당시 처음 도입된 학예연구원제도는 덕수궁 시절 촉탁과 다를 바 없었다. 전시와 작품 수집 등 미술관 주요 업무는 일반행정직으로 구성된 전시과와 그 과장이 총괄했고 학예연구실은 전시과를 자문하는 기구에 불과했다.
이런 불합리하고 전근대적인 미술관의 체제는 1996년부터 점차 개선되기 시작했지만, 작품수집과 전시 등 미술관 주요 업무를 장악해 조직과 인사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의 조직보호를 위해 개편을 위한 업무분장규정의 개정에 대한 반발과 방해는 극심했다.
특히 1998년 작품수집규정을 개정해 전문성을 지닌 학예연구원으로 작품추천권을 한정하자, 외부추천위원제도 제안, 학예연구원의 작품 추천에 비리가 있다는 소문을 내거나 각종 감사부서에 제보하기까지했다. 학예연구실은 1991년, 92년 개최한 바 있는 신소장품전을 1999년 재개해 전시와 작품 수집작품을 공개해 투명성을 공표하면서 이를 이겨나갔다. 하지만 소장품 수집은 정치적으로 임용된 관장 재임 시에는 특정 진영이나 학연, 지연에 따라 작품수집 방침이 바뀌기도 하면서 관장과 학예연구원들 간에 갈등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감독관청인 문화부는 작품수집제도의 잡음을 줄인다는 구실로 옥상옥의 제도를 도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장품 발굴을 위한 척후
학예연구원(Curator)은 작품 수집에 있어서는 미술박물관의 척후병이자 가장 전문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화랑과 아트페어, 그리고 다른 미술박물관을 방문하거나, 강의 또는 만찬에 참석해 미술계에 섞여 들어가, 미술계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듣는다. 특히 동시대 미술박물관의 경우 어떤 작가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어떤 작가가 문화적,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부상하는지를 살핀다. 특히 특정 장르나 시대를 전문으로 하는 큐레이터는 미술박물관의 컬렉션을 강화할 수 있는 잠재적 수집품의 소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구별해내는 일을 하는 큐레이터야말로 특히 능력 있는 큐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큐레이터는 미술사를 연구하는 학자인 동시에 기본적으로 영업사원인 셈이다. 큐레이터는 개성있고 재미있는 동시에 위압적이기도 한 사회적으로 성공한 기업가, 자선가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함께 작품수집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컬렉션과 돈을 끌어들이는 노력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미술박물관의 관장(Direct)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작품수집제도는 이런 큐레이터의 역할을 제한하거나 아예 금지(?)하고 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미술박물관은 큐레이터들이 미술박물관의 임무에 부합하는 작품을 찾기보다는 ‘유물매도신청 공고’를 내 그중에서 소장품을 가려 구입하는 손쉬운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소장품의 '다양성과 혁신성을 증대'시키려는 목적이라지만, 미술·박물관 소장품의 맥락을 만들어 나간다는 원칙과는 거리가 먼, 기관의 직무 유기와 다름없다.

물론 학예연구원들은 작품 수집 추천을 두고 잡음을 미연에 방지하고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업무량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환영할지 모르겠지만 작품수집을 외면하는 학예연구직을 글쎄 학예연구직이라고 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큐레이터들의 추천에 의존할 경우, 작품의 선택이 한정되어 외부 공모를 통해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해 보다 다양한 전시를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각을 도입하고, 신진 작가에게 기회를 제공하며 그 작품을 발굴해 미술계 전체의 발전과 성장을 도모해 미술박물관의 역할을 확장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박물관학(Museology)은 물론 유네스코 산하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의 박물관 윤리 강령(Code of Ethics for Museums)에 어긋나는 일이다.
미술박물관을 미술문화진흥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원칙에 벗어나는 일로 일제강점기 총독부미술관이나 국립미술관시절과 같다. 신진작가발굴과 지원을 위한 작품 수집은 프랑스는 우리나라의 미술은행과 유사한 현대 미술 공공 컬렉션(FANC, Fonds national d'art contemporain), 영국은 정부미술컬렉션(GAC, Government Art Collection)과 영국문화원 컬렉션(British Council Collection), 독일은 외국 문화 관계 연구소(Ifa, Institut für Auslandsbeziehungen), 캐나다는 캐나다예술위원회 미술은행(CCAB, The Canada Council Art Bank), 호주는 호주예술위원회(Australia Council for the Arts) 산하에 아트뱅크(Art Bank)를 두어 미술박물관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미술박물관은 박물관의 역할과 동시에 미술진흥 또는 미술산업의 진작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동원되는 후진적인 환경에 놓여있는 상황은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한다.

결국 남의 손에 의존하는 작품 수집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모든 미술관의 학예연구원이 2~5명 내외이고, 이들은 전시는 물론 교육, 작품 관리, 홍보 등 미술관의 거의 모든 업무를 전담하는 구조다 보니 작품 수집을 위한 리서치(Research)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규모가 작은 시립, 군립미술관도 최소 7~8개의 장르를 다루며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처지라 소장품 수집을 하려면 소속 큐레이터가 최소 5~10여 명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군소 공립미술관의 경우 큐레이터는 불과 1~3인에 불과해 이들이 전 장르를 책임 추천하고, 작품 수집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작품의 진위, 귀속여부, 출처, 법적 또는 윤리적 고려 사항 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서구의 미술관이 건축 및 디자인, 드로잉 및 판화, 영화, 미디어 및 퍼포먼스, 회화 및 조각, 사진 등 전문분야별로, 종합미술박물관의 경우 미술사학, 고고학, 문화사학, 역사학으로, 또는 고대이집트미술, 고대 동양미술, 고대 그리스, 에트루리아, 로마미술부, 조각부, 회화부, 판화 및 소묘부, 장식미술부, 이슬람미술부,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미술부로 나뉘어, 부서별로 필요한 작품을 추천한다. 또 작품 추천서에는 작품의 출처, 작가의 배경, 역사적, 미술사적 중요성, 기존 컬렉션과의 관련성 등을 포함해서 기술해야 하는데 이를 수행하기에는 인력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게다가 작품수집예산도 전적으로 국비 또는 지방자치단체 예산에 의존하기 때문에 국립미술관(약 40~50억원)과 광역시립미술관(약 10~20억원)을 제외하면 10억 원 미만이고, 대부분의 군소미술관은 5억 이내의 예산을 가지고 실제로 작품수집을 흉내 내는 데 불과한 실정이다.
서구의 미술박물관은 이렇게 제안된 수집대상 작품을 미술관 관장, 학예연구실장(Chief Curator)과 각각의 학예부서별 부장,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인수 위원회 또는 수집심의위원회(Collections Acquisitions Committee)에서 제안서를 검토한다.

군소미술관이 예산과 큐레이터 부족으로 작품수집이 형식적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일부 대형 미술박물관의 작품 수집은 추천부터 공모제는 물론 외부 위원에 의존하는 점도 문제다. 왜냐하면 외부 인사들은 전문성을 갖추었지만 해당 미술관의 현재 소장품의 현황과 맥락화를 위해 어떤 작품이 필요한 것인지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외부에서 추천된 작품은 미술관 내부 수집평가위원회를 거쳐 최종리스트가 결정되면 이후 작품 수집에 관한 한 전적으로 외부 인사들의 결정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도 문제다. 즉 미술관은 추천위원회가 끝나면 그 이후에는 작품 수집에 어떤 의견이나 의사 표현도 불가능하다.
모두 외부 인사로 구성된 작품수집위원회는 작품의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는 가치평가위원회와 작품의 적정가를 평가하는 가격심의위원회로 나뉜다. 이는 작품수집과정에서 관장의 영향력을 배제해 공정한 결정을 하고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겠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일부 관장들의 과도한 개입이 자초한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미술박물관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작품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이는 미술박물관의 사명과 임무를 제한하는 중대한 문제로 연결된다. 또한 외부인사로 구성된 위원들의 경우 막중한 권한에 비해 책임은 거의 없다는 점은 문제다.
사실 수집의 폭을 확대하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도 제도를 도입한 바 있지만 추천을 빌미로 금품이나 접대를 받는 등의 불미스러운 일로 없어졌던 제도가 어느새 슬그머니 부활했다. 특히 외부 위원이 추천하고 다른 위원이 심사하는 구조는 인력 풀이 넓지 않고 폐쇄적인 미술계의 구성적 한계와 가격평가위원 대부분이 미술상 또는 경매사 직원이라는 점에서 ‘이해충돌’의 여지가 있다는 점은 더욱 큰 문제다. 아무튼 대부분의 미술박물관은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고 절차는 과도하게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더더욱 복잡하게 만들어진 것은 작품 수집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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