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업체들의 영향력 확대에 한국 산업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의 TV 출하량이 한국을 처음 넘어선 가운데, 반도체 분야에서도 한국 기술이 2년 만에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전문가 설문 결과가 발표되며 업계에 충격을 더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가성비 제품에 대한 소비자 수요 증가와 기술력 향상 등으로 인해 중국 업체들의 글로벌 시장 내 점유율이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2022년부터 로봇청소기를 생산하는 중국 로보락이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꿰찬 후, 이번에는 TV 분야에서도 출하량 1위를 차지하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의 위기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작년 출하량 기준 중국 TV 브랜드인 TCL, 하이센스, 샤오미의 합산 점유율은 31.3%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점유율(28.4%)을 제쳤다. 반면, 2500달러 이상 고가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여전히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건재하다. 삼성전자는 49.6%의 독보적 점유율을, LG전자는 30.2%를 기록한 반면, TCL과 하이센스는 각각 1.6%와 0.9%에 머물렀다.
한편 로봇청소기 시장에서는 이미 로보락, 에코백스 등 중국 기업들이 국내 점유율 과반 이상을 확보한 상황이다. 지난해 상반기 로보락의 점유율은 46.5%로 집계됐으며, 150만원 이상의 프리미엄 라인에서는 65.7%의 점유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국이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혀가며 로봇청소기에 이어 TV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역전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예사롭지 않다. 이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간한 ‘3대 게임체인저 분야 기술수준 심층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전문가 3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 기술 분야는 한국이 90.9%로 평가받은 반면, 중국은 94.1%로 나타났다. 고성능·저전력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 분야 역시 중국이 88.3%, 한국은 84.1%로 평가됐으며, 전력반도체와 차세대 고성능 센싱기술에서도 중국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중국은 범용 메모리 분야에서 물량 경쟁을 통해 시장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으며, DDR5와 HBM 등 첨단 메모리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국내 기업들이 고가 프리미엄 라인에서 AI(인공지능), 보안 등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기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저가 물량 공세를 펼치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가 프리미엄 라인과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첨단 제조 기술력 확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확대, 핵심 인재 양성과 기존 인재 유출 방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