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일로를 걷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달 만에 또다시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지난달 1차 관세 발효 때와 마찬가지로 즉시 광범위한 보복 조치를 쏟아냈다. 중국은 지난번보다는 반격의 강도를 끌어올렸으나 여전히 대화의 손짓을 보내는 등 수위를 조절했다는 평가다.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개막한 만큼 양회에서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한 강경한 정책 기조를 제시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4일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오는 10일부터 미국산 닭고기·밀·옥수수·면화 등 총 29개 품목에 대해 관세를 15% 인상하고 수수·대두·돼지고기·쇠고기·수산물·과일·채소·유제품 등 총 711개 품목에 대한 관세를 각각 10% 높인다고 발표했다. 이어 상무부는 티콤(TCOM)과 스틱루더·텔레다인 브라운 엔지니어링·헌팅턴 잉갈스·S3에어로디펜스·큐빅코퍼레이션·텍스트오어 등 미국 방산업체 10곳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추가한다고 밝혔다. 이 명단에 포함되면 중국 관련 수입·수출 활동 등이 금지된다.
이와 함께 미국 방산업체 레이도스·깁스앤콕스 등 15개 업체에 대해서는 핵심 광물 등 민간·군수 이중용도 품목의 수출을 금지하기로 했다. 앞서 중국은 지난해 12월 갈륨, 게르마늄 등 민간·군수 이중용도 품목을 미국에 군사 목적으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한 바 있다.
또한 별도로 세계 최대 유전체 분석업체 미국 일루미나에 대해서는 중국으로의 시퀀서 수출을 금지하기로 했다. 일루미나는 중국의 지난번 보복 조치 때 ‘신뢰할 수 없는 기업’에 이미 포함됐다. 이후 중국 시장 축소 등에 대한 우려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약 70억 달러(약 10조원) 규모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아울러 상무부는 미국의 10% 관세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추가 제소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경기 침체 속에 미·중 무역 전쟁 전선 확장을 우려해 지난번에는 절제된 대응에 나섰지만 이번엔 수위를 높였다는 평가다. 앞서 중국은 지난달 4일 미국의 1차 추가 관세에 대해 보복 관세와 텅스텐 등 광물 5종에 대한 수출 통제, 구글에 대한 반독점 조사 등으로 맞대응했다. 당시 보복 관세 품목 중 하나였던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미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낮다.
하지만 농산물은 다르다. 중국은 대두, 소고기, 옥수수 등 미국산 농축산물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다. 2018년 트럼프 1기 때 발발한 미·중 무역전쟁 때도 중국은 관세에 대한 반격으로 대두 등 미국산 농산물에 고액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이후 중국이 브라질 등으로 농산물 수입을 다변화하면서 지난해 대미 농산물 수입은 16.3% 감소했지만 여전히 275억3000만 달러 규모에 달한다.
한편 이날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막과 함께 양회가 본격 시작되는 만큼 양회에서 대미 정책 기조를 전환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비공개로 진행되는 전인대 회의에서 무역 전쟁은 의심할 여지 없이 최우선 순위 의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은 미국에 대화의 손짓을 보내는 등 협상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 상무부는 이날 미국의 추가 관세 발효 전 발표한 성명에서 “반격 조치를 취해 중국의 권익을 확고히 수호할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평등한 대화를 통해 이견을 적절하게 해결하는 올바른 궤도로 조속히 복귀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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