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중국이 일본의 방위력 강화를 '신형 군국주의'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일본의 안보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관여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고 지역 안정을 뒷받침해 주길 바라는 기대가 커지는 한편,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가 역내 군비경쟁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 이른바 샹그릴라 대화에서 중국이 일본을 겨냥해 '신형 군국주의' 비판을 펼쳤지만, 중국의 해양 진출에 직면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 사이에서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았다고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오히려 일본의 방위협력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번 회의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 수위는 낮춘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공세를 이어갔다. 중국 대표단을 이끈 멍샹칭 국방대 교수는 좌담회에서 일본을 지목하며 "군국주의를 청산하지 못한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방위협력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관련 국회 답변 이후 국제회의와 관영매체를 통해 일본에 '신형 군국주의'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여론전을 펴고 있다.
호주도 일본과의 방위협력 확대를 강조했다.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기자단에 "일본과의 작전상 협력은 이전보다 훨씬 늘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는 해상자위대의 '모가미형' 호위함 개량형 도입을 결정하는 등 일본과의 방산·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이 일본에 기대하는 역할은 미국의 군사적 존재감을 보완하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2일 싱가포르의 빌라하리 카우시칸 전 외무차관이 일본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존재감을 떠받치는 '앵커'로 평가했다고 전했다. 미중 경쟁 속에서 어느 한쪽으로 힘이 쏠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동남아 국가들로서는 일본이 지역 균형 유지에 기여하길 바라는 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싱가포르 국책 연구기관인 ISEAS-유소프 이샤크 연구소가 지난 4월 ASEAN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중국을 택하겠다는 응답이 2년 만에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고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의 경제 공세가 겹치면서 동남아의 전략적 계산도 복잡해지고 있다.
일본의 역할 확대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동남아가 이를 전면적으로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아사히신문은 한 ASEAN 고위 관계자가 일본의 방위력 강화가 지역 안정에 기여한다는 취지의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연설에 대해 "일본이 앞으로 어디로 향하려는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이 지역에서 군비 확장이 과열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2일 보도했다. 인도네시아의 한 싱크탱크 관계자도 일본이 군비 증강에 나서는 이유를 동남아 국가들에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반격 능력 보유와 방위비 증액, 방산 수출 확대를 통해 전후 안보정책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국의 군사력 확대와 북한의 미사일 위협, 미국의 역할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과거 일본의 침략을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는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가 역내 군비경쟁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남아 있다.
중국의 대일 비판이 큰 공감을 얻지 못하는 가운데, 일본의 안보 역할에 대한 기대는 커지고 있다. 다만 그 역할이 지역의 신뢰로 이어지려면 방위력 강화의 목적과 방향을 주변국에 더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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