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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中 항저우의 '무위', 대한민국의 '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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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배인선 특파원
입력 2025-03-10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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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딥시크 등 항저우 '6룡' 배출 비결은

  • 항저우 정부 '무위이치' 주목

  • 정부는 울타리 역할…기업에 자율성

  • '민영기업 요람'으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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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杭州), 최근 중국에서 가장 핫한 도시로 떠오른 곳이다. 항저우에 본사를 둔 '중국판 챗GPT' 딥시크가 뜨면서다. 딥시크를 비롯해 항저우 소재 첨단 분야 스타트업 6곳인 이른바 ‘항저우 육룡(六龍)’도 같이 유명세를 탔다. 중국 국영중앙(CC)TV 저녁 7시 메인뉴스가 “과학기술 혁신 견인차 역할을 하며 발전 활력이 솟구친다"며 항저우시를 칭찬하는 데만 무려 6분 4초를 할애했을 정도다. CCTV 저녁 7시 뉴스에서 이렇게 띄워준 도시는 거의 없었다.

항저우 6룡을 탄생시킨 비결이 무엇인지를 놓고서 중국 내에서 논의가 활발하다.

항저우에 2024년 기준 중국 랭킹 3위 명문대라는 저장대학교가 있어서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풀이 탄탄하다. 또한 중국 빅테크(대형 인터넷기업) 알리바바의 고장으로 인공지능(AI), 데이터, 클라우드 등 IT 인프라가 잘 깔려 있어 첨단 분야 스타트업들이 활용할 수 있다. 아울러 18년째 ‘중국의 행복 도시’ 1위로 꼽힐 정도로 살기 좋다는 게 강점으로 꼽힌다.

여기에 항저우 정부도 큰 역할을 했다. 항저우 투자 유치 정책에 매력을 느껴 왔다는 한 중국 스타트업 창업주가 현지 언론에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단지에 입주해 보조금을 신청할 때까지 정부 관료와 식사 한끼도, 술 한잔도, 담배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다. 모든 게 투명하고 효율적이었다. 일만 하느라 접대에 익숙지 않은 수많은 창업자에겐 가장 편안한 교류 방식이었다. 집도 구해주고, 임대료도 깎아주고, 정부 보조금도 제때 맞춰 입금해준다. 하지만 할일이 끝나면 관료는 곧바로 눈앞에서 사라진다. 귀찮게 하지도 간섭하지도 찾아오지도 않는다. 기업이 필요로 할 때는 한걸음에 달려와 도와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림자도 볼 수 없다.”

항저우에 ‘딥시크’가 있으면 OO성엔 ‘딥드링크(Deep Drink)’가 있다며 항저우에서 6룡이 태어나 증시에 상장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OO성 기업인이 정부 인사와 술자리를 한번 갖는 것보다도 더 짧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정부와의 관시(關係, 관계)를 중요시하는 일부 지방정부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항저우 정부의 ‘무위이치(無爲而治)’가 주목받는 이유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정부가 적극 개입하거나 강제로 규제하지 않고도 사회를 잘 다스릴 수 있다는 철학이다. 항저우 정부는 기업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울타리 역할만 함으로써 자율성을 높였던 것이다.

예로부터 항저우는 경제 중심지가 되기엔 열악한 조건이었다. 상하이와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데다가, 인근 닝보시보다 제조업 기반도 약한 탓에 상대적으로 영세 중소기업 중심의 민영경제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역으로, 대다수 도시가 대형 국유기업을 선호했을 때, 영세 기업에도 자금·토지·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항저우는 ‘민영경제의 요람’이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영세 기업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비즈니스 생태계 속에서 역대 중국 부자기업 1위 와하하와 눙푸부터 알리바바, 딥시크, 유니트리 같은 민영 기업이 항저우에서 끊임없이 탄생할 수 있었다.

중국의 절대 권력 지도자로 통하는 시진핑 국가주석도 올 초 경제 업무를 나열하면서 정부의 ‘유소위(有所爲)’와 ‘유소불위(有所不爲)’를 강조한 바 있다.

사실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만 제대로 구분해도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나라가 제대로 안 돌아간다며 억지로 돌아가게끔 하려고 '유위(有爲)'했다가는 오히려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우리는 지난해 12월 경험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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