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장/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요즘 중국 지도부 연설과 언론매체에서 동진(東晋·317∼419) 시대 도교 고전인 ‘포박자(抱朴子)’에 나오는 '뜻이 맞으면 산이 막고 바다가 있다 해도 멀다 하지 않는다(志合者 不以山海爲遠)'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시진핑 주석이 2013년 3월 제5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2018년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되면서부터 중국 지도부의 국제외교 공식 멘트로 자리 잡고 있다. 2023년 9월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2024년 중국과 브라질 수교 50주년 기념식 때도 시 주석은 이 표현을 쓰며 우군 확보에 집중했다. 지난 3월 28일 시 주석은 중국발전포럼과 보아오포럼에 참석한 42명의 글로벌 기업 및 미·중 협력기구의 CEO들과의 회동에서도 이 말을 인용했다. 트럼프 2기 미·중 간 디커플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기업들의 탈중국을 막고, 외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를 독려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 중국 시장을 빼놓고 글로벌 사업을 확대할 수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참석자 면면을 보면 유럽(21명) 및 미국(15명)계 기업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바이오, 금융, IT·반도체 업종 기업이 50%를 차지하고 있다. 미·중 간 강대강 대립의 중심에 서 있는 미국 화이자, 독일 벤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첨단기업 CEO들의 발 빠른 중국행은 결국 소비시장과 공급망 생태계에 있어 중국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트럼프 1기와 바이든 행정부의 미·중 간 탈동조화 정책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외국 기업의 탈중국 이슈가 부각되었다. 특히 다른 국가 대비 한국에서 유난히 탈중국 이슈가 크게 대두되었고, 지난 정부의 탈중국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우리 산업계는 탈중국이라는 담론에 매몰되었다. 최근에는 2024년 중국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전년 대비 27% 감소했다는 통계가 발표되면서 우리 기업의 중국 시장에 대한 관심도 빠르게 냉각되었다. 외국 기업 탈중국의 본질과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급변하는 중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과 제품의 존재감은 더욱 축소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 대기업들은 글로벌 시장구조 변화와 중국 기술자립 속도에 빠르게 대처하며 다시 중국 시장 접근을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2024년 기준 삼성전자 매출의 31%, SK하이닉스 매출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여전히 중국은 우리에겐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글로벌 지정학·지경학적 불확실성이 더욱 심화되면서 기업 생존과 다변화 차원에서 다시 중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문제는 우리 중소기업들이다.
탈중국 정책으로 인해 우리의 핵심 산업 경쟁력이 중국과 초격차를 벌릴 수 있는 있었던 골든타임을 잃어버렸고, 중소·중견기업들이 중국 시장 진출에 머뭇거리는 사이 거대한 소비시장과 제조 공급망 생태계에 들어가기 위한 유럽과 아세안 국가들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탈중국하는 기업들은 어떤 업종이고 왜 탈중국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검토도 없이 우리는 무턱대고 탈중국을 애기했다. 탈중국하는 외국 기업들의 배경은 첫째, 중국 소득수준 향상에 따른 근로자 인건비 상승, 둘째, 중국 기업의 기술경쟁력 제고로 인한 치열한 시장구조, 셋째, 급격한 산업구조 변화 및 제조혁신, 넷째, 미국의 대중국 제재 심화에 따른 글로발 공급망 리스크, 다섯째, 반간첩법 및 정책 변동에 대한 우려 등 5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2024년 중국 FDI 금액 감소부터 살펴보자. 2024년 중국 FDI 금액이 8263억 위안(약 161조원)으로 전년 대비 27.1% 감소했지만 실제 투자한 기업 수로 보면 5만9080개로 전년 대비 9% 증가했다. 투자 금액은 줄어들었지만 투자 기업 수는 늘어났다. 비록 FDI 금액이 감소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과거 양적 투자보다 질적인 투자로 급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금액 중 제조업 외자유치액이 2212억 위안(약 43조원), 서비스업이 5846억 위안(약 114조원)으로 제조업보다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투자유형이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제조업 업종별로 보면 하이테크 제조업이 963억 위안(약 19조원)으로 전체 중 11.7%를 차지하며 늘어나는 추세다. 컴퓨터 및 사무설비 제조업도 전년 대비 각각 40.8%와 21.9% 증가했다. 서비스산업도 하이테크 서비스업 분야가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그중 IT기술 서비스업이 전년 대비 98.7% 증가했고, 생물바이오 R&D 및 신에너지 자동차 생태계 관련 투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는 외국 기업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 현대자동차의 탈중국을 애기하고 있지만 현대자동차가 작년 10월 상하이에 100% 소유의 첨단기술 R&D회사를 설립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다시 말해 급격한 중국 산업 및 시장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집약형 산업의 탈중국화와 함께 지식·기술집약형 산업으로 ‘진(進)중국화’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이키·아디다스·파라소닉·도시바 등 과거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한 노동집약형 및 단순가공조립형 기업들이 베트남·인도·캄보디아 등 지역으로 이전하는 탈중국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중국 상무부 통계에 의하면 2024년 기준 중국에 설립된 외자 기업 수가 약 124만개로 실제 투자액이 20조6000억 위안(약 3987조원)으로 최근 5년 투자 수익률이 9%에 이른다. 조작된 통계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2024년 주중 독일상공회의소가 324개 독일 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탈중국하는 한국과 달리 응답 기업의 63%가 중국 시장에 맞는 제품 R&D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80% 이상 기업들은 급변하는 중국 시장 수요에 부응하고,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과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 사업 확대 필요성을 애기했다. 최근 글로벌 화학회사인 독일 바스프(BASF)가 100억 유로 규모의 중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글로벌 헬스케어 그룹인 머크그룹(Merck)도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생물바이오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상하이에 글로벌 R&D센터를 설립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머크그룹은 지난 10년간 중국 시장에 약 60억 위안(약 1조2000억원)을 투자했지만 향후 투자를 더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중국미국상회가 2024년 10~11월 368개 미국 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3% 기업이 2025년 중국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응답했다. 나머지 41%는 투자 유지 그리고 6%가 투자 감소로 응답했다. 또한 미·중 간 첨단산업 디커플링으로 인해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져가고 있지만 67%의 미국 기업이 탈중국 계획이 없고, 13%는 고민 중이라고 응답했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회사인 미국의 커니(Kearney)가 발표한 2024년 FDI 신뢰도 지수에서 중국(홍콩 포함)이 미국·캐나다에 이어 세계 3위, 한국은 20위를 차지했다. 중국이 2023년 7위에서 3위로 올라서며 지속적으로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돈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꼬리표가 없다는 말을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 및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 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알테쉬톡의 공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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