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산업 부활을 국가 차원의 과제로 삼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일본에서 신설 반도체 공장의 절반 이상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롬, 키옥시아 등 주요 반도체 기업 9곳의 공장 투자 현황을 집계한 결과, 2023년도 이후 완공된 일본 내 7개 공장 중 4개 공장(4월 말 기준)이 양산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20일 보도했다.
지난해 4월 폐쇄했던 야마나시현 가와구치시의 공장을 9년 만에 다시 연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2025년 초에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전력 반도체 수요가 급감하면서 계획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시바타 히데토시 사장은 4월 기자간담회에서 “매우 불확실한 시장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새로운 양산 시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롬은 미야자키현에서 2023년 공장을 열어 2024년 11월부터 시제품 생산을 시작했지만 양산 시점은 정하지 못하고 있다. 산켄전기 역시 니가타현 공장에서 전력 반도체 증산을 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본격 생산은 당초 계획보다 2년 연기한 2026년 이후로 미뤘다.
키옥시아는 이와테현 공장 건물을 2024년 7월에 완공했으나 메모리 시장 회복 상황을 보며 생산 시작을 올해 9월께로 늦췄다.
닛케이는 이미 양산에 들어간 기업들도 반도체 생산량 확대에는 신중한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소니그룹은 나가사키현의 신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했는데, 현재로선 건물에 추가 제조 장비 반입을 위한 여유가 남아있지만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결정하기로 했다.
세계 각국에선 2020년께부터 미·중 갈등 심화 등을 배경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자 자국 반도체 산업 지원을 확대해 왔다. 일본 국내 반도체 투자는 2022~2029년에 걸쳐 약 9조엔(약 86조7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일본 정부는 2030년도까지 반도체와 AI 분야에 10조엔(약 96조5000억원) 이상을 지원할 방침이다.
다만 닛케이는 “일본 정부가 반도체 투자를 촉진하고 있지만, 지난해는 점유율이 2년 만에 낮아지는 등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글로벌 시장조사회사 옴디아에 따르면 일본의 반도체 판매액 점유율은 2024년 7.1%로 2023년 대비 1.7%포인트 하락했다. 2년 만의 하락으로, 1980년대 이후 최저 수준이다.
최첨단 반도체의 회로선 폭은 2나노(나노는 10억분의1)인 반면, 일본에서 생산 가능한 것은 12나노까지다. 일본 국내 기업에 한정하면 40나노까지 뒤처져 있다. 닛케이는 배경에 대해 “AI 반도체의 설계 개발 및 제조에서 해외 기업에 밀리며 생성 AI 붐에 동참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를 도입하면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는 상태가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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