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성과를 내고 싶었지만 끝내 한계를 느꼈습니다."
국내 대기업 연구소에서 3년간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하던 박민재씨(31)는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소재한 자율주행 분야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봉은 두 배 이상 뛰었고 연구 환경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자유롭고 수평적"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연구 제안이 상명하달식으로 이뤄지고, 논문 발표조차 제약을 받는 상황이라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박씨 사례는 우리나라 AI 산업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성과 인재일수록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사람이 없다"고 호소한다. 악순환 고리가 고착화하는 양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17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AI 인재 순유출 규모는 인구 1만명당 –0.3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룩셈부르크(+8.92명), 독일(+2.13명), 미국(+1.07명) 등 주요국과 비교하면 두뇌 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다.
과학 분야 전반으로 시야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2021년 기준 한국의 과학자 해외 이직률은 2.85%로, 외국 과학자의 국내 유입률(2.64%)보다 높아 순유출 상태다. 조사 대상 43개국 중 33위에 그쳤다. 반면 독일(+0.35%포인트), 중국(+0.24%포인트) 등은 순유입 구조다.
산업 현장도 아우성이다. AI는 물론 바이오,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부문의 구인난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해외 이탈 전문인력은 2019년 12만5000명에서 2021년 12만9000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두뇌수지(국내 전문인력의 해외 유출과 해외 전문인력의 국내 유입 격차) 적자는 2019년 7만8000명에서 2021년 8만4000명으로 확대됐다.
전문가들은 우수 인력 엑소더스가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한상의 SGI는 단기 실적 위주 평가, 연공서열식 보상, 열악한 연구 환경 등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김천구 SGI 연구위원은 "인재 유출은 기술 주권과 연구개발(R&D)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며 "대졸자 1인당 공교육 투자비(약 2억원), 세수 손실(약 3억원)을 감안할 때 투입한 교육 비용을 회수하지 못한 채 국가 재정까지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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