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장기연체채권을 소각하기 위한 '채무조정 프로그램(배드뱅크)' 재원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체 소요 재원 8000억원 가운데 절반인 4000억원을 금융권이 공동 분담하기로 하면서, 그간 부담을 놓고 이견을 보여온 1·2금융권의 참여 구도가 가닥을 잡는 모습이다.
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배드뱅크 운영 재원 8000억원 중 4000억원을 금융권에서 조달한다. 참여 대상은 은행은 물론 금융투자·보험·카드·캐피탈·저축은행·상호금융 등 전 업권이다. 나머지 4000억원은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확보됐다.
애초 4000억원은 은행권이 단독으로 출연하는 방식이 유력했다. 이전 정부에서도 부채 탕감 정책 재원은 2금융권을 제외한 은행업계에서 부담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 채권의 상당수를 2금융권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은행은 대부분의 장기 연체채권을 이미 상각하거나 매각했으며, 대손충당금도 충분히 쌓아둔 상태다. 반면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은 여전히 다수의 부실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1금융권이 재무여력을 바탕으로 큰 비중을 부담하되, 2금융권도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일정 부분 분담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다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에는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것이 당국의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다수의 채권을 보유한 개인이 사실상 5000만원을 초과하는 빚을 탕감받는 우회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오는 3분기 중 세부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번 조치로 금융사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7년 이상 장기 연체채권에는 대부분 전액 충당금이 설정돼 있어 금융사 입장에선 자산 손실보다 오히려 매각을 통한 이익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구체적으로 예상되는 매매차익은 △카드사 850억원 △은행 550억원 △보험사 400억원 △저축은행 250억원 △캐피탈사 150억원 수준이다. 특히 카드사는 1조7000억원 규모의 장기연체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나, 대부분을 이미 손실 처리한 상태여서 회계상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정부는 오는 9월까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채무조정기구를 설치하고, 연내 채권 매입을 개시할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저축은행·상호금융 등도 포함해 가급적 많은 기관이 협약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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