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청 반응 중에) '조유리가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라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저 역시도 이런 표정은 처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신경 쓴 부분인데 알아봐주셔서 감사했어요."
임산부 '준희'를 연기하며 조유리는 자신 안의 낯선 감정과 마주했다. 실제로 아이를 낳거나 키워본 경험은 없지만, 그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됐어요. 나이도 어리고, 사실 모성애를 제가 느끼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잖아요. 그동안은 투정 부리기에 바빴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런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됐어요."
"엄마뿐만 아니라, 출산한 지 오래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분도 계셔서, 지인의 지인을 통해 얼마 전에 출산하신 분께 여쭤보기도 했어요. 모성애가 언제 가장 느껴지기 시작했는지, 임신했을 때는 어떤 감정이었는지, 출산은 어땠는지... 세세하게 여쭤봤어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도 자문을 구했고요. 현장에서는 애신 선생님이 큰 도움을 주셨어요. 감사한 마음으로 임했죠."

임산부 연기를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지점을 묻자, 조유리는 '표현의 정확함'에 대한 부담을 털어놨다. 단순히 감정만이 아니라, 신체적 변화까지 함께 겪어야 하는 캐릭터였기에 연기적 고민도 깊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제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보니까, 어설퍼 보일까봐 그에 대한 걱정이 컸어요. 특히 준희는 단순히 임신과 출산만 겪는 게 아니라, 다리도 아프고 다양한 신체적 어려움도 있는 인물이라 그런 점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감독님과도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연기적으로 어디에 포커스를 둘지 함께 고민하면서 준비했어요."
조유리는 오디션에 합격한 이후 감독과 매일같이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의 결을 세밀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감독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초반의 준희는 준비된 산모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요. 갑작스럽게 아이가 생긴 상황이고, 아이를 낳을 준비가 안 된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저도 그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했어요. 임신한 순간부터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가 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던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감정의 변화가 드러나도록 연기하려 했어요."
특히 마지막 줄넘기 장면을 촬영할 때 감독이 던진 한 마디가 큰 전환점이 됐다고 한다.
"그 장면을 찍을 때 감독님이 '벌레 보듯이 봐달라'고 디렉션을 주셨어요. 처음엔 어떻게 봐야 할지 막막했는데, 그 말을 듣고 오히려 간단하고 명료해졌어요. 인상적인 순간으로 남아 있어요."
상대배우 임시완과의 호흡에 대해서도 조유리는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연기 경험이 비교적 적은 자신에게 임시완은 든든한 선배이자 좋은 파트너였다고 말했다.
"엄청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제가 아무래도 경험도 많이 없고 훨씬 후배니까, 엄청 많이 챙겨주셨어요. 감정적으로 어려운 장면이 있을 때마다 '같이 연습해보자', '맞춰보자', '감독님께 이야기 드려보자'고 먼저 얘기해주셨어요. 정말 많이 끌고 가주셨어요. 나중에 저도 꼭 다정한 선배가 되어야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준희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조유리는 극 중에 드러나지 않는 서사까지도 스스로 설정하며 캐릭터를 채워나갔다. '왜 명기를 사랑했을까', '왜 아이를 지우지 못했을까' 같은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설정을 만들며 감정선을 구축해나간 것이다.
"준희는 시즌3에도 잠깐 나오는데, 고아이자 가족이 없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명기에게 의지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사랑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준희처럼 사랑받아본 적 없는 아이라면 작은 애정에도 쉽게 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잘생긴 것도 한몫했을 거고요. 결핍이 많은 인물이다 보니 명기에게 이끌렸던 것 같고, 그래서 아이를 낳기로 한 게 아닐까 싶어요."
넷플릭스 글로벌 시리즈로 발돋움한 '오징어 게임' 시즌3는 배우 조유리에게도 큰 전환점이었다. 걸그룹 아이즈원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넘어, 본격적인 연기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계기. 그는 이 오디션을 앞두고 간절함 이상의 절박한 마음으로 임했다고 털어놨다.
"그 당시에 봤던 오디션들이 다 떨어진 상태였어요. 저를 계속 불러주는 오디션은 이것뿐이었고, '이거 떨어지면 올해는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부담이 정말 컸고,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마음뿐이었죠. 4차까지 갔을 때는 진짜 남은 인원이 얼마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부터는 '내가 무조건 따내야겠다'는 독기 어린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 절실함이 준희랑 닮아 있었던 것 같아요."
오디션 과정에서 조유리는 역할에 어울리는 외형과 분위기를 스스로 설정하고 준비했다. 캐릭터에 맞는 싸늘한 눈빛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자르고, 옷차림도 직접 고민했다. "어떤 캐릭터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참가자일 것 같다는 생각에 초록색 옷을 입고 갈까 하다가 너무 속보일까 봐 포기하고 칙칙한 옷을 입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뽑아주신 감독님께 정말 감사해요."
조유리는 '프로듀스48'을 통해 데뷔한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지만, 그는 "오디션이라는 건 적응이 안 된다"고 단언했다.
"경쟁하고 평가받는 자리는 늘 어렵고 억누르는 감정이 생기는 자리예요. 처음에는 '이제 오디션은 그만 보자' 생각했지만, 결국은 '아, 내가 오디션에 강하구나. 열심히 보자'는 마음으로 바뀌었어요."
탈락의 반복 속에서도 그는 묵묵히 자신을 갈고닦았다. "1차부터 떨어지면 차라리 괜찮았을 텐데, 늘 최종까지 가니까 감질맛이 났어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 내가 늘고 있구나' 싶었어요."
연기에 대한 갈증은 오디션이 처음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시절 연극부 활동으로 처음 연기의 재미를 느꼈고, 아이즈원 활동 중에도 혼자 여자 독백을 찾아 읽어보는 등 꾸준히 연기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연기 레슨은 활동하면서도 계속 받고 있었어요. 솔로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연기에 도전했는데, 그 갈증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 정말 만족도가 높아요. 재밌게 하고 있어요."

조유리는 '오징어 게임3' 현장을 떠올리며 가장 먼저 '다정함'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줄넘기 게임 장면을 촬영하던 당시, 함께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이정재와의 기억은 유독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줄넘기 게임할 때 이정재 선배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곁에 오래 있다 보니 챙겨주시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제가 뭔가 질문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도 전혀 어려움이 없을 만큼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참 감사했어요."
촬영 초기, 긴장감이 컸던 조유리에게 선배들의 따뜻한 한마디는 큰 힘이 됐다. 특히 첫 촬영이 끝난 직후 들은 칭찬은 그에게 큰 위안이었다고 털어놨다.
"처음 촬영할 땐 긴장도 많이 했고, 사실 좀 무서운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첫 촬영 끝나고 나서 선배님들이 '눈빛이 좋다'고 해주셨어요. 이정재 선배님도, 이병헌 선배님도요. 그 이후부터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고, 촬영 자체도 점점 즐겁게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조유리는 배우로서의 방향성을 묻는 질문에 단단하고 분명한 대답을 내놓았다. 화려한 수식보다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그의 목표는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최종적인 목표는 많은 분들이 '조유리가 나온다고 하면 재밌겠네' 하고 믿고 봐주시는 배우가 되는 거예요. 제가 나오는 작품이라면 기대가 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큰 꿈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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