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위기극복] 승부수 '빅3'…①일자리 ②광역시 집중투자 ③입시제도 개혁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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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이 일상화된 일본에서 구마모토현 기쿠요초와 규슈현 지토세 지역이 활기를 띠고 있다. 공통점은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산업보조금을 최소 약 5조엔(약 47조원) 넘게 쏟아부은 곳이다.

23일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홋카이도경제연합회는 인구 9만명 소도시 지토세에 일본 정부와 8개 민간기업이 공동 출자한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가 들어섰으며, 그 경제효과는 2036년 18조8000억엔(약 18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쪼그라들었던 인구도 10만2200명을 넘어설 기세다. 라피더스 효과로 대규모 신규 아파트·오피스가 들어서고 청년·기술 인력 유입이 이어진 결과다. 

당근밭 일색이었던 인구 4만명인 기쿠요초도 변화를 거듭 중이다. TSMC 반도체 공장이 잇따라 들어서며 2021년 대비 인구가 12.4%나 늘었다. 늙어가는 일본에서 인구 순증은 보기 드문 사례다. 인재 채용은 물론 인프라 확장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지역 경제도 되살아났다. 규슈경제조사협회는 구마모토현의 경제효과를 10조5360억엔(약 94조원)으로 전망했다. 사라질 뻔한 시골의 대변혁이다.
 
대만 TSMC의 일본 구마모토현 제1공장 사진AP연합뉴스
대만 TSMC의 일본 구마모토현 제1공장 [사진=AP연합뉴스]
반면 우리나라 반도체 공장은 수도권에만 초집중돼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수도권이 80.7%, 충청권이 15.8%로 두 권역을 합치면 무려 96.5%에 달한다. 주요 기업인 삼성전자(화성·평택·기흥)와 SK하이닉스(이천)의 주력 생산공장이 경기도에 몰리면서다.

반도체뿐 아니라 전국 지역별 산업 활동도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이뤄진다. 한은의 '지역산업연관표'에서 전체 산출액 가운데 수도권 비중은 2010년 44.1%, 2015년 46.8%, 2020년 49.9%로 편중 현상이 갈수록 심화됐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공공기관들을 지방 각지로 이전하며 20년 동안 160조원 넘는 예산을 투입했으나 수도권 집중만 더 심각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구마모토와 훗카이도처럼 지역 맞춤형 전략으로 전반적인 정주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주 여건 개선의 핵심인 질 좋은 일자리, 거점도시 집중투자, 입시제도 개혁은 지방 소멸을 해결할 필수 선행 과제로 꼽혔다. 고학력 청년들이 수도권에 몰릴수록 소득 높은 일자리와 문화·의료 등 서비스의 지역 간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과도한 입시경쟁이 청년층의 지방 이탈을 부추긴다고 평가하며 대학 입시제도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도입해 서울과 비서울 간 진학률 격차를 줄이면 수도권 인구 쏠림 현상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동원 한은 경제연구원실장은 "서울에 집중된 입시경쟁을 분산시켜 수도권 인구집중, 서울 주택가격 상승, 저출산 및 만혼 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청년층 유출을 지방소멸의 핵심 원인으로 짚었다. 다만 대응정책을 설계할 때 진학 단계보다 취업 단계에서 정책적 개입이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임금 보조, 세제상 혜택 등 지방기업 취업에 대한 지원은 비수도권 취업 확률을 약 7%포인트 증가시키며, 비수도권 진학 확률도 약 0.5%포인트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단순한 취업 기회를 제공하기보다 질 좋은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견해도 많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인 이철희 경제학부 교수의 '일자리 질이 결혼과 출산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제조업 고용 비율이 표준편차(7.45%포인트) 만큼 증가하면 합계출산율, 무배우 혼인율, 유배우 비율이 평균보다 최대 5.0%, 9.8%, 4.8% 높아졌다.

이 교수는 "지역의 일자리 질은 결혼과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라며 "기존 저출산 대책은 현금·보육 지원이나 청년층 주거지원 방안에 집중됐는데 장기적인 결혼·출산율 제고를 위해선 청년 일자리 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본처럼 지역 특성과 강점을 고려한 맞춤형 클러스터 조성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52개 유형의 산업클러스터 2330개에 최근 5년간 6조5449억원을 퍼부었지만 차별성이 없어 성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지동하 예정처장은 "지역산업 활성화를 통한 지방 활력 제고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산업클러스터 간 연계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지방을 지원하기보다 2~3개 소수 거점 도시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정된 예산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인프라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도록 하는 거점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공기관 이전 정책의 대표적 산물인 혁신도시(10곳)는 대표적 실패 사례로 거론된다. 

한은 연구에 따르면 '제2 도시' 부산의 생산성이 1% 개선되면 경남과 울산의 GRDP는 각각 0.9%와 1.1%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민수 한은 지역경제조사팀장은 "공항·항만·철도 등을 건설하거나 공공기관을 이전할 때는 거점도시 인접성을 우선순위로 하고 거점도시 투자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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