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중동워치] 총성 멎은 가자 지구 …분노가 자라고 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중동의 심장부인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다. 유대인들이 일상으로 던지는 '샬롬'이라는 인사말도 평화다. '이슬람'이라는 언어적 의미는 평화다. 평화의 종교를 지향한다. 아랍인들의 가장 대표적인 인사말은 '앗 살라무 알라이쿰', 즉 “신의 평화가 그대에게 그득하소서”이다. 평화, 평화를 달고 산다. 사실 2천년 가까이 아랍인과 유대인들은 종족적 차이와 종교적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의 제한된 경작지와 열악한 생태조건에서도 큰 마찰이나 갈등 없이 평화롭게 공존해 왔다.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상생과 협력적 삶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두 민족이 극단적 적대세력으로 서로의 증오를 쌓아가는 폭력성의 원천은 100여 년전 영국과 프랑스가 뿌려놓은 갈등과 배신이 그 뿌리이고, 1948년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주도하여 밀어붙인 팔레스타인 영토 위에 세워진 이스라엘 국가의 출현이었다. 아랍이 반영국, 반프랑스에서 반미로 전환하는 계기였다. 근대 역사에서 아랍인들의 적대적 이해당사자는 가혹한 식민지배자였던 영국과 프랑스였다. 미국은 일찌감치 석유의 미래가치를 간파하고 1945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신생 사우디아라비아를 직접 방문하면서 중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초대 국왕 압둘 아지즈 이븐 사우디와 회담하면서 미국에 석유를 공급해주는 대신 사우디에 군사적 지원과 안보를 보장해준다는 협의를 하게 된다. 자신의 생명선을 책임지는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게는 좋은 파트너였고 처음부터 친미노선을 걷게 되는 배경이다. 아랍인들의 미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는 미국이 이스라엘 건국을 강행하면서 산산조각이 난 셈이다.

유럽 사회가 저지른 홀로코스트라고 하는 끔찍한 문명범죄를 회피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땅의 아랍인 원주인을 희생시키면서 오늘날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억울함은 분노를 부르고, 일방적 영토 포기 강요는 저항을 불러왔다. 전쟁이건 테러건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진 자의 막강한 폭력과 영토 확장 야욕을 이겨낼 방도가 없었다. 빼앗긴 자들은 결국 화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당했고, 마지 못해 협정에 서명했다. 그때마다 당사자들은 예외없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수상자들인 안와르 사다트, 메나헴 베긴, 지미 카터, 야세르 아라파트,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 버락 오바마 등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화해의 길을 만들고 중동 지역의 평화를 위해 기여한 공로로 지구촌의 박수를 받았다. 그럼에도 왜 중동에는 평화의 분위기보다는 갈등과 전쟁, 민간인 학살이라는 총성과 탄식만이 가득할까. 이 시각에도 팔레스타인의 지중해 해변 지구 가자에서는 어린이와 여성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고, 굶주림을 공격무기로 사용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민간인 참극이 23개월째 벌어지고 있다.
 
서구 사회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자지구 형제의 비극을 대하는 이슬람의 종교적 연대나 아랍민족주의의 고상한 대의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일반 아랍대중의 정서적 공감과 민족적 분노는 팽배하지만, 대다수 아랍국가들은 개별 국가중심주의와 왕정체제보호 최우선 정책으로 돌아선 지 오래다. 그 계기는 2010년 아랍민주화 시위였다. ‘자스민 혁명’으로 불리던 ‘아랍의 봄’ 시위는 민주적 정권창출에는 실패했지만 종교성의 약화, 인권의식, 여성 참여, 시민사회의 중요성이 보다 많은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이슬람이란 종교적 연대는 더 이상 결정변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신중동 그랜드 프로젝트의 시나리오에 따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수단, 모로코 등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과 전격적으로 수교했고, 오만, 쿠웨이트, 카타르, 심지어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이스라엘과 손을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과도 단절된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갈등과 긴장 상태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라 협력과 공존의 끈을 놓지 않고 ‘차가운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념보다는 실용외교가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변수가 생겼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가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여 1200여 명의 시민들을 죽이고 200여 명을 인질로 잡는 테러사건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즉각적인 보복을 선포하고 가자지구로 침공하여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양산하고 있다. 1996년 총리에 취임한 이후 29년 동안 이스라엘 정치 중심에 서 있던 극우 집권 세력 대표인 네타냐후 총리는 국내 정치의 부패 스캔들과 사법 리스크를 피하고, 정치적 생명 연장을 위해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 전쟁은 분명 하마스의 선제공격과 민간인 납치라는 용납할 수 없는 테러가 그 원인이었다. 그러나 하마스는 국제사회를 향해 16년간(2007~2023)의 집단 감옥생활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2007년 이스라엘 당국에 의한 일방적인 분리장벽(팔레스타인측에서는 이를 고립장벽이라 명명한다) 설치 이후 물과 전기, 인터넷이 이스라엘에 의해 시도 때도 없이 통제당하는 절박한 상황을 호소한다. 지난 16년 동안 이스라엘의 가자 폭격으로 6000여 명의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정당한 법적 절차나 보호자 면회조차 허용되지 않는 9000여 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을 외치고 있다. 이스라엘 정권에 의해 국제법이나 인류의 보편가치가 억압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극심한 고통을 알리고자 전쟁을 일으켰다고 하마스는 주장한다.

이스라엘의 집중 포격으로 하마스는 거의 궤멸 되었고,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는 이웃 친이란 무장세력들에게도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네타냐후 총리의 정권연장 수단이 돼버린 전쟁 지속을 위해 급기야 국제법을 위반하고 미국과 핵 문제 평화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 이란 핵시설과 군사거점을 맹폭했다. 이란을 핵을 포기한 저항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주변 프록시(대리세력)들에 대한 군사지원을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국제법상 불법 점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나 가자, 시리아의 골란 고원과 베카 계곡 같은 전략적 옥토를 실효적 지배를 통해 영구히 자국영토화 하겠다는 오랜 시나리오가 깔려있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은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보호정책이다. 소위 이스라엘과 ‘영혼의 동맹(Spiritual Alliance)’으로 불릴 정도의 특수관계인 미국이 유엔이나 국제사회의 강한 비판에도 무조건 이스라엘을 두둔함으로써 합리적인 중동평화 로드맵은 번번이 암초를 만났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의해 이스라엘의 점령지 일부에 팔레스타인 인들이 국가를 이루고 이스라엘과 이웃해서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두 국가 해법(Two States Solution)도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팔레스타인 국가가 들어설 서안지구만 해도 이미 68만명의 유대인이 82%의 영토를 차지하고 200개 이상의 정착촌을 만들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의 논리가 바로 정의’가 되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에서 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살아온 땅을 이스라엘 이주민들에게 더 많이 양보하고, 이란이나 주변 국가들은 핵을 가진 이스라엘을 상대로 무장해제에 가까운 포기를 할 때 비로소 이스라엘이 원하는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회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면, 빼앗긴 자의 처절한 저항은 더욱 가속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항능력을 상실한 하마스는 당장은 궤멸의 수순을 밟겠지만, 종전 이후 가자 지구에서는 더욱 강경한 반이스라엘 투쟁 집단이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마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수십만명의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은 자라나면서 무엇으로도 설득할 수 없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저항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직 이스라엘 총리였던 에후드 올메르트는 하마스를 키운 것은 네타냐후 총리라고 단언한다. 네타냐후는 가자의 하마스와 서안의 파타라는 두 팔레스타인 정파 간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서로의 분열을 부추기기 위해 외교, 군사, 경제적 개입을 서슴지 않았다. 점점 강경해지는 파타를 견제하기 위해 네타냐후는 카타르의 경제지원을 주선하여 수억 달러가 가자의 하마스에게 흘러 들어가게 했고, 결과적으로 오늘의 강력한 하마스를 키운 배경이라고 비난한다. 이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액수의 정치자금이 네타냐후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것이 그의 사임을 옥죄는 사법리스크의 핵심이다.
 
하마스 전쟁이 끝나면 네타냐후 정권의 운명도 끝날 것이라는 것이 중동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하마스의 본토공격을 막지 못해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국민 안전 보장 실패는 탄핵의 핵심 사유일 것이고, 종전을 원하는 국민 여론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1인당 GDP가 5만2000달러(2024년)에 달하는 국민들이 2년간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로켓포 공포에 시달리며 잠을 설치는 삶을 선호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국제사회의 압력이나 외부적 요인으로 네타냐후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할 방도는 막연하고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이는 이스라엘 시민들이 감당할 몫이다. 놀랍게도 언론 통제 상황에서도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무고한 민간인 참상, 구호품을 얻기 위해 달리다가 죽어나가는 반인륜적 참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도하고 이스라엘 군대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것도 이스라엘 시민단체다. 1978년에 설립된 피스 나우(Peace Now), 이스라엘 시민권 협회(ACRI) 등을 중심으로 건강한 이스라엘 시민사회가 합리적으로 평화지향적인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한다면, 두 국가 해법을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는 극단적인 대결보다는 합리적으로 윈윈하는 대화의 분위기가 비로소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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