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낭만닥터 김사부' '홍천기'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안효섭은 이번 작품을 통해 한층 더 깊어진 얼굴을 보여준다. 낯선 세계에 던져진 평범한 인물이 점차 중심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려내며, '김독자'라는 캐릭터에 설득력을 더했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안효섭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데뷔 10년 만에 처음으로 선택한 스크린 도전은 단순한 필모그래피의 확장이 아니라, 배우로서 새로운 챕터를 여는 시작점처럼 느껴졌다.
"일부러 영화를 안 했던 건 아니고요, 이 작품을 만나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저는 작품 선택할 때 심장이 끓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대본을 받고 감사하게도 참여하게 됐죠. 처음 대본을 본 게 2년 반 전인데, 1년 만에 촬영을 마쳤고 오랜 시간을 기다렸어요. 지금 이렇게 스크린에 걸리고, 시사도 하고 나니까 믿기지 않고 설레고… 기대도 정말 커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안효섭은 '영화 자체에 대한 애정'과 '김독자라는 인물에 대한 깊은 공감'을 동시에 꺼내놓았다.
"이런 한국 작품이 실사화돼서 어떤 결과물로 나올지 궁금했어요. 시나리오를 받고 이걸 어떻게 찍지? 싶더라고요."
그러면서도 궁극적으로 마음을 움직인 건 '김독자'라는 인물이었다.
"'김독자'도 세상에 치이고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인물이었잖아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평범한 사람인데, 그 모습에서 제 자신을 봤던 것 같아요."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 따라붙는 기대와 우려에 대해서도 그는 솔직했다. 원작이 주는 기대치를 함부로 훼손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동시에, 눈앞의 텍스트에 집중해 캐릭터를 쌓아나가려는 배우의 다짐이 동시에 전했다.
"원작이 있는 줄 모르고 시작했어요. 주변 친구가 엄청 감격하더라고요. 세계관에 관해서 엄청 세세하게 설명해줬어요. 저는 원작을 다 읽지는 않았고 대본 위주로 캐릭터를 연구했어요. 저도 좋아하는 작품이 리메이크된다고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는 편이에요. 각자 머릿속에 구현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그걸 깨부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요. 다만 걱정에 발목 잡히기엔 의미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 대본 안의 '김독자'를 최대한 열심히, 잘 그려내는 거니까요."

안효섭은 '김독자'라는 인물을 연기하며 가장 먼저 부딪힌 고민을 '평범함'의 정의에서 찾았다. 누구에게나 다른 기준이 있는 만큼, 획일화된 '일반성'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는 오히려 그 다름 안에서 독자의 결을 구체화해나갔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감독님이랑 계속 이야기를 나눴어요. '독자의 평범함은 뭘까?'부터 시작했죠. 평범하다는 게 애초에 뭘 의미하는 걸까? 키가 크면 안 되는 거야? 얼굴은... 그런 생각들이 들더라고요. 키가 작은 사람이 있으면 큰 사람도 있고, 얼굴도 다 다르잖아요. 정말 일반적인 사람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다음 숙제는, 독자가 어떻게 살아왔을지를 그리는 거였어요. 백팩을 앞으로 메고 다니는 사람인지, 문을 잡아주고 기다리는 사람인지… 그런 사소한 행동들을 상상하면서 쌓기 시작했죠."
안효섭은 '김독자'에 완전히 녹아들기 위해 외적인 부분부터 과감히 내려놓았다.
"독자로 캐스팅됐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얼굴을 신경 쓰지 않는 거였어요. 그냥 독자로 존재하고 싶었거든요."
분장팀, 의상팀과도 긴밀히 상의하며 파운데이션 톤을 어둡게 하고, 사용감 있는 옷을 고르는 등 외형부터 '원 오브 뎀'처럼 보이도록 공을 들였다.
"초반엔 어벙벙한 옷을 입다가, 퀘스트를 거치며 점점 타이트한 옷으로 바뀌어요. 구색을 갖춰가는 과정도 디테일하게 담고 싶었고, 그 상태에서 정갈한 액션을 보여주려고 했죠. 독자가 성장하는 타이밍을 액션에도 반영하려고 계산적으로 찍었어요."

안효섭은 CG가 주요하게 쓰이는 신들을 연기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체감한 건,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그 상상과 디테일한 정보가 맞물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현장에 가면 굉장히 많은 상상이 필요했어요. 그냥 '여기서 괴수가 나타날 거야, 여기가 깨질 거야' 정도로는 안 되더라고요. 제가 배운 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CG가 아무리 완벽해도, 그 둘의 인터랙션이 잘 맞지 않으면 어색하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는 철저히 감각을 채워가며 준비했다.
"감독님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설명해주셨어요. 괴수가 어디서 어떻게 덤빌 건지, 갑옷은 얼마나 단단한지, 찔러도 안 들어갈 정도인지… 이런 깊은 디테일을 공유해주셨고, 그걸 듣는 데 많은 시간을 썼어요."
영화 속에서 '김독자'의 나레이션은 단순한 설명을 넘어, 관객이 인물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탑승할 수 있도록 이끄는 장치였다.
"독자의 서사가 좀 더 쌓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레이션을 통해서 독자의 사상을 알 수 있을 거라고 봤고요. 그런 방식이라면 관객이 독자에게 더 깊이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죠. 얼굴이 꽉 차게 잡히는 클로즈업 컷이 많았는데, 그만큼 나레이션도 효과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봤어요. 관객이 독자의 감정선에 탑승해야지, 바깥에서 관망하는 순간 그건 이미 틀렸다고 생각했어요."
안효섭은 동료 배우들을 "서로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사이"라고 표현했다.
"워낙 다들 자기 위치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분들이라, 처음엔 커다란 산을 만나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함께 작업하면서 느낀 건, 정말 다들 프로라는 거였죠. 모두가 하나의 큰 그림 안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어요. 누구 하나 튀려고 하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가 화합하는 방향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하면서도 감탄할 때가 많았고, 작업 자체도 무척 수월했어요."

안효섭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진우 역으로 목소리 출연했다.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며 자연스레 '전지적 독자 시점'까지 글로벌 관객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엔 '케이팝 데몬 헌터스? 그게 뭐야?' 싶었죠.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걸 떠나서, 저는 그냥 진우라는 캐릭터가 멋있었어요. 저는 끌리는 거에 마음이 가는 스타일이라, 순수하게 재밌을 것 같아서 참여했던 거고… 이렇게까지 반응이 클 줄은 전혀 몰랐어요. 노래는 제가 원래 음악을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편이라, 감사한 마음에 커버도 올렸어요.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큰 아웃풋이 나와서 놀랐고, 진우로서 뿌듯하다기보다 그냥 이 작품을 재밌게 본 사람으로서 그 반응이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안효섭은 '전지적 독자 시점'의 후속편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확고한 기대를 드러냈다.
"속편이란 건 제 선택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지고, 운이 따른다면 당연히 참여하고 싶죠. 1편의 독자는 자신의 철학이 없고, 계속해서 그것을 찾아가는 인물이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스스로 기준을 세우게 되죠. 만약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독자는 그 기준을 토대로 더 주관적이고, 능동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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