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태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전략·정보학과 겸임교수]
올해로 중국 시진핑 정부의 ‘중국제조 2025’ 선언이 10주년이 되었다. 시진핑 주석은 2012년 집권 이후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 대국굴기를 주창하였다. 중국은 대미관계에 있어 신형대국관계를 주장하였으며, 일대일로를 대외관계 핵심과제로 설정했다.
중국은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경공업에서 경쟁력을 갖추었지만,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산업혁신을 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산업 전반에 걸쳐 4차 산업혁명을 추진하였으며, ‘중국제조 2025’·인터넷플러스·쌍순환을 경제개혁의 주요 전략으로 삼았다. 시진핑은 반도체 자립을 위해 2025년까지 자급률 70%를 목표로 했다. 반도체 굴기는 중국 산업정책의 핵심으로 미국 정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미국은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냉전체제가 종식되고 세계패권을 주도해왔는데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경제 미래에 의구심이 생기게 되었다. 일본을 제치고 G2 국가에 등극한 중국은 “미국을 추월할 수 있겠다”라는 꿈이 생겼다. 고도성장을 계속해 온 중국으로선 미국과 맞서겠다는 야심을 갖게 된 것이다.
시진핑은 전기차 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였으며 알리바바·바이두 등을 인공지능(AI) 전문 기업으로 지정하였고,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였다. 트럼프 1기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주장하면서 중국과 관세전쟁을 펼쳤으며, 화웨이 등 중국 IT 기업들에 대한 제재도 본격화하였다. 5G 통신장비 사용을 둘러싸고 미·중 간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이른바 미국과 중국을 택일하라는 뜻이었다. 서방의 동맹국들은 트럼프의 요청에 호응하였다.
미국의 주요 표적은 스마트폰 세계시장 3위, 정보통신장비 1위였던 화웨이였다.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중지시켰으며, 구글도 안드로이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관리하는 경제안보 정책을 추진하였다. 중국에 반도체 장비, 반도체 기술,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는 등 총체적인 압박 전략을 추진하면서 반도체 칩4동맹을 통해 일본·대만·한국이 대중국 반도체 봉쇄에 협력하기를 희망하였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미국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반도체 지원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통해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전기차·배터리 업체에 지원금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동안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이었던 것을 탈피하여, 미래 핵심 산업에서는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이 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 전략이 성공했다. 한국, 일본, 대만 등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했고, 미국과의 경제동맹이 강화되었다. 미·중 관계는 디커플링으로 악화하였다.
중국은 미국의 전방위적 봉쇄정책으로 반도체 분야에서는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전자제품에서 세계 최고의 수출국으로 미국 제재를 피해 범용 반도체에 주력하면서 반도체 장비·반도체 기술을 개발하였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 효과는 컸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현재 약 25%이다. 애당초 목표치에는 크게 못 미치지나 파운드리에서 중국 SMIC가 대만 TSMC,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와 반도체 설계에서도 발전하고 있다.
‘중국제조 2025’의 성적표를 보자.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국으로 부상하였다. 올해 1∼4월 글로벌 전기차 판매 순위에서 중국 BYD와 지리가 미국 테슬라를 앞질렀다. 중국 배터리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위다. 드론의 DJI는 세계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CEO 왕타오는 드론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린다. 스마트폰에서도 샤오미가 세계 3위이고, 그 뒤를 이어 중국의 오포·비보가 있다.
한때 스마트폰 세계 3위였던 화웨이도 최근 중국 시장 1위를 탈환하였다. 화웨이는 연구개발에 매출의 20% 이상을 투자하는 무서운 회사이다. 화웨이는 전기차에도 진출했고, 자율주행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반도체설계 회사인 하이실리콘과 함께 최소 11개 이상의 반도체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구글인 바이두는 오랜 기간 자율주행기술 개발에 집중해왔다. 이제 그 결실을 얻고 있다. 바이두는 중국 주요 도시에서 로보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구글 자회사 웨이모와 테슬라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AI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스타트업 딥시크의 생성형 AI 기술이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구글·MS·오픈AI 등 미국 IT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제조 2025’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엄청난 변신을 하였다. 중국은 값싼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가 아니다. 중국 기업들이 첨단산업에서 글로벌 IT기업들과 경쟁하는 기술 수준에 이르렀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했다. 미·중 간의 무역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중국은 미국 첨단기술의 대중국 수출 제재에 맞서 희토류 수출 제재를 대응 카드로 꺼내 들었다.
시진핑 정부는 ‘중국제조 2025’ 성공에 힘입어서 ‘중국 표준화 2035’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중국은 양자데이터, 생성형 AI, 휴머노이드 로봇,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등 9개 미래산업을 지정하였고, 반도체, 5G통신, 전기차, 자율주행 등 8대 신산업을 선정하였다. 중국은 스마트폰의 안드로이드, iOS처럼 로보택시, 휴머노이드 로봇 등 산업 전반에 걸쳐 기술 표준화를 성취하겠다는 생각이다. 첨단산업에서 미국과 중국은 표준화 주도권을 놓고 뜨거운 경쟁을 할 것이다. 최근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향후 10년 내 국내 제조업이 AI를 활용하지 못하면 상당 부분 퇴출할 것이다”라고 경종을 울렸다.
AI 반도체 최강자인 엔비디아 젠슨 황은 “로봇공학과 피지컬 AI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촉발할 것이다”라고 역설하고 있으며, 챗 GPT를 만든 오픈AI CEO 샘 올트먼도 “초지능 AI시대가 가까워졌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양자컴퓨터도 상용화될 것으로 본다. 미래 사회는 첨단기술의 전쟁터가 될 것이다.
미래 핵심 기술은 AI 반도체, 양자컴퓨터, 초지능 AI이며 이것을 바탕으로 로보택시, 휴머노이드 로봇, 플라잉카, 자율주행선박, 저궤도 위성통신 등 산업 전반에 걸친 기술 표준화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구글, 메타, 아마존, MS, 테슬라, 오픈AI 등 미국의 대표적 IT 기업들이 미래 첨단기술 선점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테슬라 일론 머스크는 “올해 안으로 미국 인구 절반에 로보택시 서비스를 보급할 계획이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다. 미·중 기업들의 첨단기술 표준화 선점 여부가 미중패권경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향후 살아갈 미래 세상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혁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기술 표준화 선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기아차, LG전자, 네이버 등 국내 대표기업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정부도 미래 사회에 대비하는 첨단기술 전략을 수립해서 추진해야 한다. 중국 기업들은 국내기업의 강력한 경쟁자이다. 정부와 우리 기업들은 신발 끈을 다시 조여 매고 힘차게 달리지 않으면 위기에 직면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Pace 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주 보스턴 총영사관 영사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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