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올해 ‘전후 80년 담화’는 발표하지 않기로 했지만 다음 달 초 ‘전후 80년 개인 견해’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하고 ‘이시바 끌어내리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견해 발표를 고집하는 이유에는 부친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시바 총리는 종종 “패전(敗戰)을 종전(終戰)이라 말하면 본질을 오해하게 만든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이는 돗토리현 지사 등을 지낸 부친 이시바 지로가 자주 입에 담곤 했던 말이다. 부친은 생전 건설성 차관으로 재임할 당시 결재 문서에 ‘종전’이라는 단어를 ‘패전’으로 고쳐쓰게 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부친은 태평양전쟁 당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육군 감찰 담당관으로 복무하며 전쟁의 참상을 지켜봤다. 이를 통해 전쟁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갖게 됐다.
이시바 총리는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한 사실을 마주하고 교훈을 이끌어내려는 부친의 모습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의 죽음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일본이 왜 무모한 전쟁에 돌진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을 정치인으로서의 평생 과제로 삼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1일, “그가 방위 대신 등을 역임하며 ‘국방족(族)’이 된 것도 문민 통제를 철저히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해설했다.
이시바 총리는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 문서에 조인한 날을 기려 다음 달 2일 ‘전후 80년 개인 견해’를 발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1945년 8월 15일은 일본 천황이 자국민과 군인들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전투 상태를 멈추라’고 라디오로 방송한 날이라면, 9월 2일은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한 명확한 패전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앞서 지난 1월 31일 국회 예산위원회에서도 “왜 전쟁을 시작했는가, 왜 피할 수 없었는가. 80주년인 올해가 검증을 위해 매우 중요한 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이시바 총리의 고집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지지하는 자민당 의원들은 이시바가 전후 80년 견해를 발표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상은 “(아베 전 총리가 2015년에 발표한) 70년 담화가 전부다”라고 단언했다.
이시바 총리는 80주년 메시지 발표에 집착하면 할수록 당내 반발과 사퇴 압력을 높이는 딜레마에도 직면하고 있다. 집권 자민당의 ‘일본의 존엄과 국익을 지키는 모임’은 이달 7일, 참의원 선거 패배를 계기로 이시바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서면을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비서에게 전달했다. 이시바 총리의 ‘견해’에 대해 “선거에서 두 번이나 패한 총리의 개인 견해 발표는 극히 부적절하다”는 내용이었다.
닛케이는 “이시바 총리가 이번 주 짧은 휴가를 다녀온 뒤 견해 발표 여부를 최종 결정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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