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태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전략·정보학과 겸임교수]
트럼프 2기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관세정책이 시작된 지 반년이 지났다. 트럼프의 관세폭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EU, 일본,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4월 중국과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관세보복 전쟁을 벌였으나, 기차를 멈추고 관세유예 기간을 가지며 무역 협상을 진행 중이다.
각국 정부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도 트럼프 라운드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전 산업에 걸쳐 미국에 수출하는 외국 기업들은 관세가 적은 지역을 찾아 움직이는 지경학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시민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전쟁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그 해답을 찾아보자.
이 싸움은 2017년 트럼프 1기가 출범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주요 타깃은 중국이었다. 시진핑 주석의 대국굴기와 함께 중국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중국은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가 바통을 이어받아 대중국 봉쇄정책을 강화하였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글로벌 공급망체계를 재구축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에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였고, 동맹국과의 경제협력 수단을 활용하여 반도체 기술의 대중국 이전을 차단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여 핵심 정책으로 지경학 수단인 관세보복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무역상대국을 대상으로 고율의 관세인상을 선포했다. 이것은 자유무역주의에 반하는 전형적인 보호무역주의 정책이다. 미국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도 소용없다. 세계 각국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인 관세 책정에 불만을 품고 있다.
최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 (USTR) 대표의 주장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자유무역 질서를 이끌어 왔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식”을 알리면서 “관세와 제조업 보호를 위한 트럼프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턴베리 체제 구축이 진행 중이다”라고 역설하였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시각은 “WTO 체제로 중국이 많은 이익을 보았으며, 미국이 불리하였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라운드로 신보호무역주의 시대를 실현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적어도 트럼프 2기 정권 4년 동안 트럼프 라운드는 지속될 것이고, 2028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 라운드를 신봉하는 공화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향후 8년간은 턴베리 체제가 유지될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무역주의가 장기간 지속된다는 것은 유익하지 못하며 그 후유증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세계는 트럼프 라운드에 왜 끌려다니는 것인가?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그 이유를 발견하는데 어렵지 않다.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80년 동안 세계패권을 유지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이며,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경제력은 물론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소 냉전체제는 종식되었지만 신냉전시대가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리더이기도 하다. 미국이 시장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을 존중해왔는데, 트럼프 2기 정부가 극단적 보호무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트럼프 라운드를 추진하여 세계 무역질서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당국을 1기 정부 때처럼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다. 동맹국에 심한 압박감을 주면서도 중국에는 두 차례에 걸쳐 총 180일간 상호관세 부과를 유예하는 등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 도대체 왜 그럴까?
시진핑 정부가 ‘중국제조 2025’ 정책을 통해 첨단산업을 발전시켜 미국과 첨단기술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으며, 바이든 정부 4년 동안 미국의 대중국 봉쇄에 적응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보복 카드인 희토류 수출통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중국이 희토류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어, 시진핑 정부가 수출통제를 가하면 미국 기업들이 힘들어진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이 계속 악화한다면, 세계 경제에 막대한 악영향을 주게 된다.
지정학적으로도 현재 국제정세가 트럼프 1기와는 사뭇 다르다. 트럼프 2기가 출범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중동지역에서는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과 반이스라엘 세력에 대한 네타냐후 총리의 군사작전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아직 종식되지 않아서 미·중 관세전쟁을 확산할 경우, 트럼프가 러시아·중국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부담을 지니고 있다.
지난 8월 15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미·러 정상회담이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에 합의하지는 못했다. 트럼프는 궁극적으로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서둘러서 중국 정부를 견제하려는 속내를 갖고 있다.
미국이 시진핑 정부를 포함하여 모든 무역대상국과 관세 협상을 종료한다고 해서 과연 트럼프 라운드가 멈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이익을 위해 지경학 차원의 압박 수단을 다양하게 활용할 것이다. 트럼프 2기는 관세정책에 이어 또 다른 비장의 무기를 갖고 있다. 이른바 환율전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책사인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지난해 11월 미국 경제회복을 위해 관세전쟁과 환율전쟁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미란 보고서’를 작성했다.
1라운드 관세전쟁에 이어 2라운드 환율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자유무역주의를 지향하면서 자국 경제회복 수단으로 국제통화체제를 활용해왔던 측면도 있다.
미국은 2차세계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를 통해 안정적인 국제통화 시스템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미국 재정 악화로 달러의 금태환정책을 중지했으며, 브레턴우즈 체제가 종식되었다. 1985년 레이건 정부는 일본 엔화를 평가절상시켜 미국경제가 반사이익을 얻도록 주요국들과 플라자합의를 맺은 바 있다.
역대 미 정부는 수출주도형 국가들의 환율정책을 문제 삼아왔다. 트럼프 1기 정부도 중국의 위안화 환율정책을 지적했다. 중국은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정부에 이어, 2019년 트럼프 1기 정부에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었다. 과거 한국과 대만도 환율조작국에 속해 어려움을 겪었다. 트럼프 정부는 관세정책으로 미국경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주요 무역대상국에 환율조작 문제를 거론할 것이다. 미 정부는 올해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베트남 등 9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환율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방심하지 말고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는 미·중 간 관세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에도 중국의 대국굴기를 저지하고 미국의 인공지능(AI)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미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짓도록 글로벌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목소리는 명확하다. “관세가 싫으면 미국에 직접 투자하라”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주장하는 트럼프 라운드는 미국을 위한 것이다.
한국기업들이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에서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현지 투자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많은 국내기업이 한국에 공장을 설립하지 않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확대될 것이다. 국내 대기업은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겠지만, 국내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국내 인력을 확충하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Pace 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주 보스턴 총영사관 영사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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