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AI(인공지능)가 국가와 기업의 미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주요국은 AI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정부도 100조원 규모의 AI 투자를 통해 국가 발전의 돌파구를 만드는 데 매진하고 있다. 필자는 작년부터 ‘AI는 늦었지만 AX(AI 대전환)는 앞서가자’는 슬로건과 함께 AX 중심의 AI 전략을 우리 국가 및 기업 전략으로 제시해왔다. ‘쩐(錢)의 전쟁’으로 사실상 주도하기 어려운 AI 원천기술 경쟁은 우리의 장기인 ‘빠른 추격자 (Fast Follower)’ 전략으로 따라가고, AI를 활용하는 AX 경쟁은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산업 분야 등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AX란 AI 대전환(Transformation)의 약자로 ‘AI 활용’이라 쉽게 표현할 수 있고 전문적으로는 AI를 활용하여 산업, 사회, 조직 전반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 칼럼에서는 AX의 접근 방법을 관점에 따라 나누고 우리나라가 구사해야 할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AX는 먼저 AI가 작동되는 방식에 따라 ‘에이전트(Agentic) AI’와 ‘물리적(Physical) AI’의 두 가지 활용 기법으로 나뉜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올해 초 미국 CES(소비자전자쇼)의 기조연설에서 AI 발전 단계 중 3단계로 에이전트 AI, 마지막 4단계로 물리적 AI를 제시하여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에이전트 AI는 주어진 목적을 위해 사람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AI 시스템을 말한다. 기업의 마케팅, 제품 개발, 구매, 생산 등 기능별 AI 에이전트가 예다. 물리적 AI는 실제 물리적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자율적으로 상호작용하는 AI 시스템을 말한다.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 자동화 시스템 등이 예다. 최근 정부 및 기관 보고서에서 영어 발음 그대로 ‘피지컬 AI’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용어 표준화 차원에서 이를 따르고자 한다.
실제 기업, 정부 등 사용자 측면에서 AX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을 가진다. 하나는 모든 업무의 생산성 및 경쟁력 제고이고 다른 하나는 제품 및 서비스의 혁신이다.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의 목적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에이전트 AI 기반 AX의 목적은 생산성 및 경쟁력 제고다. 쉽게 말해서 10명이 할 일을 1명이 할 수 있게 하거나 10시간 걸릴 일을 1시간에 처리해 생산성을 극대화하자는 목적이다. 업무 산출물의 완성도와 질적 수준도 높아져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피지컬 AI 기반 AX의 목적은 제품 및 서비스의 혁신이다. 로봇, 자율주행차와 같은 피지컬 AI 시스템을 통해 무인 자동화, 미래 모빌리티 등 획기적 제품 및 서비스 혁신을 구현할 수 있다.
다른 관점으로, AX는 적용 범위에 따라 ‘수평적(Horizontal) AI’와 ‘수직적(Vertical) AI’의 두 가지 활용 기법으로 나뉜다. 수평적 AI는 모든 분야에 걸쳐 범용적으로 활용되는 AI다. 챗GPT와 같이 모든 분야를 다루는 범용 LLM(거대언어모델)이 예다. 수직적 AI는 특정 산업과 같이 한 분야에 특화된 AI다. 영문명 그대로 ‘버티컬 AI’라는 용어로 많이 쓰인다. 제조 특화 AI, 더 세분화하여 자동차산업 특화 AI, 의료 특화 AI, 더 세분화하여 영상 판독 특화 AI 등이 예다.
이 두 가지 관점에서 구분되는 네 가지 AX 분야, 즉 에이전트 AI 분야를 수평적 에이전트 AI와 수직적 에이전트 AI로 나누고, 피지컬 AI를 수평적 피지컬 AI와 수직적 피지컬 AI로 나누어 각 세부 분야별로 우리나라의 강약점, 기회 위협 요소를 바탕으로 전략적 방향을 분석하면 매우 의미 깊은 방향이 도출된다.
결론적으로 먼저 에이전트 AI 활용 분야에서는 범용인 ‘수평적 에이전트 AI’ 분야보다는 특정 분야에 특화된 ‘수직적 에이전트 AI’ 분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범용 LLM과 같은 수평적 에이전트 AI는 미국의 오픈AI,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천문학적 투자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분야라 승산이 희박한 분야다. AI 및 디지털 주권 확보 차원의 ‘소버린 AI’ 전략과 함께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 접근이다. 대신 수직적 에이전트 AI 분야는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 등 산업 특화 AI 활용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다음으로 피지컬 AI 분야에서도 범용인 ‘수평적 피지컬 AI’ 분야보다는 특정 산업에 특화된 ‘수직적 피지컬 AI’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더 승산이 높다. 특히,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같은 범용 피지컬 AI 분야에서는 성능으로는 미국에 뒤지고 가격으로는 중국에 뒤져 미·중 사이에 낀 넛크래커 형국이어서 정면 대결은 녹록지 않다. 대신 우리가 강한 제조업 등 산업 분야에 특화된 수직적 피지컬 AI 개발에 주력해야 승산이 있다. 우리나라에 매우 중요한 제조 로봇의 경우, 제조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사람을 대체하기 위해 사람을 꼭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매달리니 많은 투자와 높은 가격이 불가피하다. 대신 제조 시스템을 로봇 친화적으로 재구성하면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더라도 투자와 가격을 줄일 수 있다. 사람처럼 걸어 다니거나 뛰어다닐 필요가 없는 이동 장치를 부착하거나 사람 손과 같은 정교한 로봇 손 개발이 필요 없는 핸들링 장치 개발도 가능해진다.
결국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 모두 특정 산업에 특화된 수직적(버티컬) AI 분야, 즉 ‘산업 특화 AX’에 주력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이길 수 있는 전략적 방향이다. 산업 특화 AX 분야에서 우리가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는 것은 AI 모델보다 산업별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업의 대표적 분야로 반도체, 자동차, ICT, 로봇, 바이오 등 주력 및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우리나라만큼 전 분야에서 세계적 제조 역량을 가지고 있고 산업별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가 많이 축적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AI 모델 및 플랫폼을 가지고 있으나 산업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는 제조의 해외이전으로 취약하다. 중국은 이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다 가지고 있으나 축적된 도메인 노하우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아직 앞서 있는 산업 분야가 많다. 우리나라가 산업 특화 AX에서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산업 특화 AX에서 세계 최강이 되려면 민관 혼연일체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산업별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를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화 및 구조화, 표준화가 시급하다. 이는 개별 기업 단위로는 어렵고 정부 주도의 데이터 생태계 구축 사업이 필요하다. AI와 데이터를 주관하고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을 주관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을 관장하고 있는 중소벤처기업부 등 연관 부처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만이 아니라 같은 입장의 미국, 독일, 일본 등 제조 강국과의 협력이 윈윈할 수 있는 효과적 전략이다.
산업 특화 AX 분야의 R&D(연구개발) 투자 확대도 중요하다.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GPU(그래픽처리장치), NPU(신경망처리장치) 등 컴퓨팅 인프라 확충도 중요하나, 산업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 체계 및 처리 기술에 대한 R&D 투자가 시급하다. 특히, AI 모델의 내재적 문제인 환각(Hallucination)에 따른 오류 최소화가 관건이다. 챗GPT와 같은 범용 LLM의 환각 오류가 10%를 상회하다가 최근 발표한 GPT-5는 4.8%로 많은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100개의 답 중 5개가 오답이라는 의미인데, 이 수준은 범용의 수평적 에이전트 AI에서는 어느 정도 통할 수도 있지만 백만 개 중 10개 미만인 싱글 PPM 수준의 정확도 및 정밀도가 중요한 산업 특화 AX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환각 오류 최소화를 위해 현재 RAG(검색증강생성), 강화학습, 온톨로지 기반 지식그래프, XAI(설명가능한 AI) 등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나 더 많은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다양한 제조업 분야에서 장기간 축적된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가 국내는 물론 해외 전문가 그룹과도 협력하여 개발에 주력하면 세계 최강의 산업 특화 AX 강국이 될 수 있다.
가자, 산업 AX 최강국으로!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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