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산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등 다수 기업이 이번 사태로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하면서 사태의 파장은 장기간 광범위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기업 관계자는 "구금된 근로자가 석방돼도 향후 미국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게 됐다"며 "미국 출입국 절차가 더 까다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여 사업 차질은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천재지변 같은 돌발 변수로 현장은 아수라장"이라며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귀국해야 그 다음을 논의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텍사스에서 370억 달러(약 46조원)를 투자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는 중이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원)를 투입해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은 내년 말 가동을 목표로 설비 반입을 진행 중인데 인력 파견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테슬라 차세대 AI6 칩 생산 일정도 미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대차그룹도 미국 조지아주 공장 증설을 통해 연내 120만대 생산 체계 구축을 할 예정이었지만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루이지애나주 전기로 제철소 건설과 연 3만대 이상 AI 로봇 양산 등 각종 중장기 계획 역시 한국인 인력 수급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지연이 예상된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파운드리 공장 3곳을 짓고 있는 대만 TSMC도 전문 인력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 A16(1.6나노) 공정 등 최첨단 칩의 수율을 올리는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비자 문제로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가동 예정이었던 1공장은 올 상반기로, 2공장과 3공장은 2026년 가동에서 2028년으로 연기됐다. 고용 문제로 TSMC의 미국 내 제조 비용이 대만에 비해 50% 이상 비싸지고, 애리조나 공장 3곳을 다 합쳐도 생산성이 전체 미국 칩 수요의 7%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기업들은 최악의 경우 국내 근로자와 기업 간 소송전 발생도 걱정한다. 현행 미국 이민법에 따라 한국인 근로자들이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3년간 미국 재입국이 불허될 수 있다. 강제추방은 개별 신분에 따라 5~10년 미국 입국이 금지된다. 근로자들이 회사나 원청업체를 상대로 미국 입국 금지에 따른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산업계 관계자는 "근로자들이 피해 구제를 요구한다면 기업이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최초 사례인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전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